결혼후 첫 촬영작‘ 베를린’서 열연…전지현의 또 다른 변신

냉전시대 남북한 첩보원의 활약상 하정우·한석규·류승범과 연기호흡 전작 예니콜과 캐릭터 달라 ‘매력’

“007·본 등과 어깨” 언론 잇단 호평 CF스타라는 하나의 타이틀 보다 “나이 맞는 수식에 갖고 싶어요”

“결혼 후 처음으로 촬영한 작품이 ‘베를린’이에요. 여자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한결 성숙한 느낌이랄까요. 주위에서도 비로소 어른으로 대접해주시더군요. 이제는 뭐든지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여유와 집중력이 생겼습니다.”

전지현(32)은 류승완 감독의 첩보액션 영화 ‘베를린’에서 독일 주재 북한 대사관의 통역사 련정희 역할을 맡았다. 북한말을 쓴다. 극중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전설적인 첩보요원 하정우의 부인으로, 아이를 낳은 경험도 있는 여성이다.

결혼은 자신감도 더했다. 전지현은 “내 개인사의 변화가 없었던들, 이번 영화에서 설정된 내 배역이나 내가 하는 대사를 과연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팬들이 영화 속 내 캐릭터를 믿어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언론 시사회 후 ‘베를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남북한의 비밀 첩보요원이 서로 쫓고 쫓기는 가운데, 미국-러시아-이스라엘-아랍 세계까지 아우르는 국제적 음모가 펼쳐지는 영화로 ‘본시리즈’나 ‘007’ 등 외화에 어깨를 겨룰 만한 첩보 액션물로서의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하정우ㆍ한석규ㆍ류승범의 활약도 일품이거니와 첩보원의 작전에 휘말리는 전지현 또한 쟁쟁한 연기파 남자배우 틈 속에서 당당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전작 ‘도둑들’에서 줄타기 전문 여도둑 예니콜 역이 젊고 거침없으며 도발적인 ‘제 나이’의 감수성을 찾아줬다면, ‘베를린’은 결혼한 30대 여성이자 20년 이르는 연기경력의 배우로서 전지현을 ‘제 자리’에 들여앉혔다.

조국(북한)에 대한 사명감과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숙명 사이에서 절제된 연기, 그리고 첫 도전한 북한 사투리 표현이 ‘CF 스타’라는 기존의 편견을 완전히 밀어내고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 전지현’에 집중케 한다.

여유와 자신감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영화 어땠어요?” “저 어땠죠?” “북한 사투리 연기 어땠어요?” “(하정우와의 부부연기가) 꽤 잘 어울리지 않았나요?”라고 연방 쏟아내는 질문에도 묻어 있었다.

영화 개봉에 앞서 만난 자리는 서울 명동의 한 카페. 전지현이 광고모델로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의 한 곳으로 옆에는 그의 커다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류승완 감독이 ‘한 시대의 아이콘에게 이런 무거운 역할을 맡겨도 되나’라고 걱정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나는 오히려 ‘도둑들’에서 예니콜과는 또 다른 배우로서의 포만감이 있었죠. 전작이 감정을 발산하고 내지르는 역할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선 뭔가 숨기고 절제하는 표현이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만족감이 있었죠. 감정에 대한 정리를 하고 이를 낯선 억양과 말투로 표현해야 하니 북한 사투리 연기는 감정 전달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어요.”

전지현은 ‘도둑들’에선 “내가 비주얼(영상ㆍ외모) 담당”이라고 농담을 던졌고, 이번 작품에선 “드라마 담당”이라고 말했다.

현란한 액션과 긴박한 추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적인 음모와 북한 내부 권력투쟁의 한가운데 놓인 전지현과 하정우의 비극적인 사랑은 관객의 마음을 적신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하겠죠. 결혼도 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맞는 배역도 다 달라지겠죠. 련정희 역할처럼 이제까지 와는 다른 인물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예전 수식어에 연연해하고 싶지 않아요. 나이에 맞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죠.”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