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으로 박찬욱 감독을 떠나 보내며 와락 껴안았다니까요. 저는 촬영이 한달이나 남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이나마 한국어로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낯선 타지에서의 고민과 영화 수다를 떨던 동료를 떠나보내고 ‘전쟁터’ 같은 할리우드에 혼자 남겨진 기분은 어땠을까? 생전 없던 포옹을 다했으니 말이다.
김지운 감독(49)은 ’할리우드 진출 분투기’를 단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뉴 웨이브’(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두 감독, 김지운과 박찬욱이 비슷한 시기 할리우드에서 첫 작품을 찍었고, 국내에서 차례로 그 결과물을 내놓는다. 김지운이 먼저다.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이자 1980~90년대 스크린 액션 히어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을 기용한 액션 영화 ‘라스트 스탠드’가 오는 21일 개봉한다.
“처음에는 시스템 적응하느라 제 색깔을 제대로 못 냈죠. 시간없어서 ‘오케이’하고, 눈치보여서 ‘오케이’하고. 그래서 영화가 초반에는 뻑뻑한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안정을 찾고 저만의 뉘앙스나 색깔을 냈습니다.”
‘라스트 스탠드’는 3000만~4000만달러 규모로 미국에서도 중급 규모의 액션영화다. 이 정도의 예산의 상업영화라면 할리우드의 제작시스템은 혹독하다고 할 정도로 빡빡하다. 촬영 스케줄을 바꾸거나 새로 대사를 집어넣는 일 같은 상황은 ‘있을 수 없거나’, 감독이 굉장한 협상력과 전투력으로 스튜디오를 상대해 ‘쟁취’해야되는 일이다. 최근 서울 신문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운 감독은 “내가 새로운 액션 신을 구상해 촬영 회차를 늘려달라고 했더니 프로듀서가 와서 ‘그러면 보험회사에서 와서 이 작품 압수해간다’고 엄포를 놓더라”고 말했다.
“조감독과 프로듀서는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채근하고, 저는 눈치보고 고민하고 했더니 아놀드가 와서 ‘감독은 아티스트니까 시간과 여유를 더 줘야 한다, 재촉하지 마라’고 하더군요. 현장에서는 아놀드의 말 한마디가 누구보다 권위가 있었거든요. 그제서야 비로소 제가 안정을 찾았어요. 처음에는 현장이 ‘주지사님’ 중심으로 돌아가다가 그때부터 저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45분간의 액션과 유머는 해외언론으로부터도 만장일치의 찬사가 쏟아졌다. 김지운 감독이 현장과 작품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영화는 폭발적인 속도와 파괴적인 화력을 더했다. 이 영화는 호송 중 탈출한 거대 마약 조직 보스와 미국-멕시코 접경 지역 마을의 한 노쇠한 보안관(아놀드 슈워제네거)과의 대결을 담았다. 적은 군대 맞먹는 조직원과 차량ㆍ총기ㆍ화기를 총동원하고, 탈옥한 보스는 시속 300㎞가 넘는 슈퍼카에 올라 질주하는데, 이에 맞서는 이들은 한가로운 시골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던 노회한 보안관과 오합지졸 부하ㆍ괴짜 주민들이다. 여기서 이 영화의 통쾌함과 유머가 비롯된다.
“미국에서도 제가 낸 아이디어를 구현한 장면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었죠. 마지막 옥수수밭에서 슈퍼카를 탄 악당과 보안관이 추격전을 벌이며 싸우는 장면, 좁은 복도 계단에서의 총격전, 마을 주민 할머니가 적에게 쏴 눕히는 신…. 엄청나게 싸우면서 애초 시나리오를 바꿔 촬영한 내용입니다.”
김지운 감독이 예로 든 장면들은 미국 뿐 아니라 국내 시사회에서도 ‘빵빵’ 터졌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오락 영화지만, 유니크한 액션을 찍고 싶었다”는 김지운 감독의 분투가 없었다면 ‘라스트 스탠드’는 지나치게 특색없는 작품이 될 뻔했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과정을 완벽하게 마스터한다는 기분으로 이 프로젝트에 임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 이후에 어둡고 심각하고 무서운 영화보다는 밝고 통쾌하고 오락적인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라스트 스탠드’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김지운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에 성공적인 입성을 알린 작품”이라며 “우위썬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계 감독 이상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평했다. 김지운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로부터는 SF스릴러와 액션스릴러, 미스터리 서스펜스 등 3편의 프로젝트를 제안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당장의 차기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을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로 한국에서 찍는다.
그럼, 첫 할리우드영화의 연출료는 어땠을까? 김 감독은 “한국에서보다 두 배 정도 받았지만 에이전시와 회계사 등 수수료, 세금을 빼면 비슷하다”
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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