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재벌‘ 애증의 60년’ 들여다보니
박정희 정부중화학공업 육성·수출 주도 정책 재벌탄생 이끌며 대기업 쥐락펴락 김영삼 정부출총제 강화 등 재벌 다잡기 실패 국제수지 악화 결국 IMF사태 직면 김대중 정부외환위기 속 기업 혹독한 구조조정 삼성 등 세계 100대기업 대열 이끌어 노무현 정부소유구조 개선 등 기업 투명화 추진 성장보단 균형 무게…투자활성화 미비 이명박 정부정권초엔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치 임기말 재벌개혁 선회 오락가락 박근혜 정부는?성숙한 자본주의 ‘법·원칙’ 중시 기업경영 패러다임 변화 예고
박근혜 정부 시대를 맞아 대기업은 예의 긴장하고 있다. ‘성숙한 자본주의’를 내건 새 정부의 압박 강도가 거셀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정권과 대기업 사이의 긴장과 협력의 변주는 어김없이 반복됐다. 시대별 경제상황에 따라 정부는 재벌을 이용하기도 하고 옥죄기도 하면서 경제성장과 민심잡기를 위한 줄타기를 해왔다. 한때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정경유착의 패착을 빚기도 했던 애증의 60년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관심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며 기업을 적극 활용했다.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주도형 경제를 위해 대기업을 집중 육성해 재벌의 탄생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사업 인허가, 외자 조달, 특혜성 정책금융, 공업단지 조성 등 전방위적으로 재벌을 지원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전두환 정부는 재벌 규제의 근간인 공정거래법을 제정했다. 1980년 12월 31일 탄생한 공정거래법은 1986년 1차 개정을 통해 ‘대규모기업집단제도’를 내놓았다. 당시 재벌로 불렸던 기업을 법 개념으로 묶어 규제 대상으로 규정한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국제그룹 해체, 각종 정치자금 수수 사건 등 기업 위에 군림한 정권이란 비난도 받았다.
노태우 정부는 ‘보통사람’의 시대로 접어든 점에 주목하며 정권 초 대기업 정책의 고삐를 움켜쥐었다. 1990년 2차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금융회사 간 상호출자를 추가로 금지했고 상호출자의 예외 허용 항목을 축소했다.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과징금 제도도 신설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국제화가 기업 경영의 화두로 떠오르고 대규모기업집단이 급증하면서 재계는 반격에 나섰다. 공정위 폐지론이 일었고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대선 출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정치인 양성기관 설립 발언 등 군사정권하에서 숨죽였던 재계가 목소리를 높였다.
▶외환위기, 롤러코스터를 타다=김영삼 정부는 ‘신재벌정책’을 펼쳤다. 역대 정권과는 차별화된 재벌개혁을 시도한다며 업종전문화정책을 펼쳤지만 실패했다. 문어발식 기업구조를 탈피해 재벌은 2~3개의 주력업체와 주력업종에 집중하라고 주문하며 소유 분산을 유도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의 출자한도를 40%에서 25%로 강화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아닌 산업자원부가 주관 부처가 되면서 성과를 보지 못했고 정권 말 폐지됐다. 1990년대 후반을 향하며 이미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국가채무가 쌓이는 등 경제위기의 전조 현상이 빚어진 데 대해 재계는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불만이 뒤따랐다.
외환위기라는 미증유(未曾有)의 경제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바탕으로 강력한 재벌개혁, 과감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집권과 동시에 출총제를 폐지하며 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꾀했지만 순환출자를 통해 더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식으로 용도전환됐다. 2002년에는 10차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을 완화했다. 외환위기 이후 우량 상장회사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늘자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의결권을 열어주는 획기적인 선물로 특혜시비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혹독한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IT 강국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삼성, 현대, LG 등은 세계 100대 기업에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넘어서=노무현 정부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추진, 기업의 소유와 지배구조 개선, 투명ㆍ책임경영 강화 등을 노렸다. 당시 시장경제 체제를 제고하며 출총제 축소 및 예외인정 보완, 지주회사 전환 권장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성장보다 균형과 분배를 강조하며 수도권 규제, 지역균형발전 등에 무게중심을 두며 기업들의 투자활성화를 이끌지는 못했다.
기업가 출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재계를 설레게 했다. 실제 2009년 출총제를 폐지했고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9%로 완화했다. 수출 중시의 고환율 정책으로 웃음 지었던 재계였지만 임기 말에 다다르면서 재벌개혁으로 선회한 MB노믹스에 대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한편으로 배신감을 지울 수 없었다.
향후 5년, 박근혜 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어떨까. 공정위는 최근 대기업들이 거래 중간에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를 끼워넣어 중간 마진을 챙기는 이른바 ‘통행세’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 신설에 나서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경제민주화 법안으로서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국정운영 철학은 최근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법원의 철퇴와 맞물리면서 기업경영의 패러다임 변화까지 예견하게 한다. 경제민주화가 기업 오너를 향하자 벌써부터 전문경영인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한층 높아진 기업경영의 투명성 요구는 이해 못할 사정이 아니고 실제 기업들도 변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사정당국은 물론, 정부 각 부처의 압박에 고스란히 노출된 현 상황은 그 어느 정권보다 힘든 게 사실”이라고 하소연했다.
류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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