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사건’은 한국전력의 ‘갈등 대처 능력 부재’와 주민의 빈약한 논리에 기댄 ‘반대’, 그리고 행정부ㆍ정치권의 ‘무관심’이라는 삼박자가 결합돼 만들어진 대한민국 갈등사의 결정판이다.

우선 공사 주체인 한전 측의 안이한 인식과 고압적인 진행방식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 한전은 2007년 11월 송전탑 건설 사업에 대해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는 과정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송전탑 건설 구간에 포함된 양산시와 창녕군ㆍ기장군 등에서도 일제히 주민 반발이 일어난 것은 필연이다. 현재 한전 측은 ‘유독 밀양만 문제’라 주장하지만, 전국 여러곳에서 송전탑 건설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관측이 다수다. ‘갈등 관리’에 구멍이 있다는 얘기다.

전ㆍ현직 한전 사장의 사태 인식도 문제다. 김중겸 전 한전 사장이 밀양을 방문한 것은 단 한 번 뿐이고, 김쌍수 사장은 아예 방문한 적이 없다. ‘지도에 줄을 그으면 탑이 세워진다’는 것이 한전 측 생각이란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고압적인 자세 때문이다. 그나마 조환익 현 한전 사장은 밀양 현장을 수차례 오가는 성의를 보였지만, 여전히 주민은 한전 측을 믿지 못하고 있다.

이남우 주민대표는 “현재까지 한전 측과 6번의 회담이 있었다. 한전은 3차 회의에서 ‘정부 명령이 있으면 지중화할 수 있다’고 했지만 5차 회담 때 조환익 사장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뗐다”고 주장했다.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송전탑 반대 측 인사의 빈약한 논리도 문제로 지적된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준한 신부는 ‘왜 밀양만 문제냐’는 질문에 “밀양이 터가 세서 그렇다”고 답했다.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는 “한전 측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고, “보상으로 이번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제로”라고도 했다.

‘지중화 요구’와 ‘우회 요구’라는 두 가지 방안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당초 일부 주민은 송전탑 위치를 인가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겨주면 송전탑 설립을 수용할 수 있다는 ‘타협안’도 내놨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강경파 주민의 반대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뒤늦게 뛰어든 정치권도 비난을 면키 어렵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29일 오전 산자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진행, 협의체에서 결론이 나기 전까지 송전탑 건설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 구간에서 할머니들이 나체 시위를 하고 할아버지들이 돌을 던지며 한전 직원과 격렬하게 몸싸움이 일어나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일단 넘긴 셈이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다분히 ‘인기영합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또 앞서 국민권익위원회 등 외부 기관 주재로 양측이 합의 도출을 시도했지만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바 있어 최종 결론이 어떤 식으로 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홍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