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1. “내 안에 악마가 있다.”
1999년 6월 2일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의 한 주택가에서 홀로 집을 지키던 가정부가 살해됐다. 가정부는 양손이 묶인 채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머리와 얼굴 부위가 으스러질 정도로 가격을 당한 상태였다. 범인 정두영은 이후 10개월 동안 16차례 강ㆍ절도 사건을 저질러 8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9명을 살해했다. 체포된 정두영은 왜 그토록 잔인하게 피해자들을 살해했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안에 악마가 있어요. 그 악마가 한 짓이에요”라고 답했다.
#2. “더 못 죽인 게 한이다”
1994년 9월 20일,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은 서울 서초경찰서에 집중돼 있었다. 비밀 지하실까지 갖춘 ‘살인 공장’을 차려 5명을 연쇄 살해하고 사체를 소각로에 태워버린 살인 집단 ‘지존파’에게는 반성도 후회의 심정도 없었다. 그들은 살기등등하게 카메라를 향해 “더 못 죽인 게 한이다!”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힌 그들의 자신들의 인간성마저도 불살라버렸다.
지난 10일 세상에 알려진 경기도 용인의 엽기적 살인 사건 역시 국민들을 한여름밤의 악몽 속으로 빠트렸다.
19살 A 군은 평소 알고 지낸던 17살 소녀 B 양을 성폭행하고 목졸라 살해했다. A 군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 군은 무려 16시간 동안 모텔방 화장실에서 공업용 커터칼로 시신의 살점을 도려냈다. 그리고 훼손한 사체를 자신의 집 장롱 속에 보관했다.
범행의 엽기성이 드러나자 사이코패스(psychopath)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A 군이 공포영화를 즐겨봤다거나 별다른 죄책감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 등이 이런 분석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듯했다.
사이코패스란 타인과의 공감을 전혀 이뤄내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보다 15% 가량 떨어져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또 세로토닌 분비가 부족해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이에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A 군을 사이코패스로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A 군의 살인이 우발적이란 사실에 주목했다. A 군은 성폭행 신고가 두려워 B 양을 살해했고,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애초부터 살인이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A 군이 남긴 글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A 군은 범행 다음날인 9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내겐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이젠 메말라 없어졌다. 오늘 난 죄책감이란 감정 또한 느끼지 못했고, 슬픔이란 감정 또한 느끼지 못했고, 분노를 느끼지도 못했고, 아주 짧은 미소만이 날 반겼다. 오늘 이 피비린내에 묻혀 잠들어야겠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의 잔인성을 내보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세상이 나를 내몰았다’는 식의 자조와 후회 성격이 짙다”고 분석했다. 또 A 군이 자수를 선택한 점 역시 사이코패스의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한편 경찰은 A군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실시한 결과,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도취적이며 의사를 결정할 때 상황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충동적이고 반사회적 특징이 강하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다만 경찰은 A 군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연쇄 살인범으로는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이 있다. 2009년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7명의 부녀자를 연쇄살해한 강호순에게 여성들은 하나의 ‘사냥감’이었다. 강호순에게 살인은 쾌락적인 유희에 가까웠다. 강호순은 성폭행이나 성관계를 위해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했다가 만족을 채우고 나면 거리낌 없이 살해하는 잔인한 면모를 보였다. 강호순은 보험금을 노리고 장모의 집에 계획적으로 방화를 저지르고 나서는 “거실에 피운 모기향 때문에 불이 붙었다”며 짐짓 슬퍼하는 척 치밀하고 지능적인 거짓말로 경찰을 농락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학교 교수는 “사이코패스의 일반적 특징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역시 대표적인 사이코패스로 손꼽힌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등 20명을 살해하고 시신 11구를 토막 내 암매장했다. 그가 노린 범행 대상은 서울 시내 고급 주택가의 노인 그리고 출장마사지 여성 등이었다. 그는 검거된 뒤에도 “경찰에 잡히지 않았으면 100명까지 살해할 생각”이었다고 말해 사회를 경악케 했다.
죄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계획된 범행을 저지르며, 특히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살해하는 것, 또 이같은 범죄 행위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거나 권력욕을 채운다는 점이 ‘감정이 없는 악마’ 사이코패스들의 공통점이다.
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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