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약관 꼼꼼히 챙기고 동의정보 사용처 캐묻고 경품 이벤트참여도 자제
천문학적 사회적 비용에도 자기정보주권 관심 제고 기회
새내기 회사원 A(28) 씨는 최근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서 카드모집인과 한 시간여 동안이나 실랑이를 벌였다. 카드사 제휴 영업이 정보 유출의 진원지라는 소식에 깨알 같은 카드 약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기 때문이다. A 씨는 “예전 같으면 그냥 별 생각없이 정보동의란에 표시를 했겠지만, 이젠 내 정보가 어디로 제공되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께 열린 A금융지주 임원회의에는 유례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카드 자회사가 금융당국의 특별검사를 받는 상황에서 회의를 주재한 지주 회장은 고객정보 보호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A 지주는 고객정보를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최고 정보보호책임자의 의견에 따라 전격적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카드사의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가 터진 지 한 달이 지났다. 1억400만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이번 사건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컸음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상하이 로드웨이 D&B 사건(1억5000만건), 하틀랜드 베이먼트 시스템스 사건(1억3000만건)에 이어 세 번째로 컸다.
정보유출 사태는 곳곳에 많은 상처와 함께 근본적인 문제들을 드러냈다. 우선 전 국민이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 과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금융회사에서 빠져나온 내 정보가 너무나 많은 곳에서 활용된다는 사실에 경악해야 했다.
만능으로 여겼던 주민등록번호의 한계도 노출됐다. 정부는 주민번호를 대체할 새 식별번호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 등 앞으로 들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카드사태가 우리 사회에 상처만 남긴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은 자기정보 주권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별 생각없이 표시하던 개인정보 동의란을 꼼꼼히 체크한다. 정보 제공을 대가로 공짜로 받던 경품이나 포인트에도 경각심이 높아졌다. ‘결국 공짜는 없었다’는 인식 때문이다.
경품 행사로 마케팅 정보를 수집해온 한 보험사 관계자는 “정보유출 사태 이후 할인마트 경품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회사들도 고객정보 보호에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고객정보 관리 전담 조직인 ‘고객정보보호본부’를 신설했다. KB국민은행은 ‘IT정보보안부’를 ‘정보보보호본부’로 격상하고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로 IBM 출신 전문가를 영입했다. IBK기업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도 고객 정보보호를 중점 추진과제로 삼기로 했다.
금융당국도 고객정보 유출을 일부 금융회사의 일회성 사고가 아닌 금융권 전체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기검사 시 정보보호 항목을 최우선에 두기로 했다. 관행적으로 이뤄진 금융 계열사 간 정보공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유출 사고 시 최고책임자(CEO)까지 책임을 묻는 등 처벌 규정도 강화했다. 개별법마다 다른 정보유출 처벌기준 등을 수정하는 작업도 착수했다.
이상용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이번 사태로 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은 커졌지만 자기 정보주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대책이 쏟아졌다”며 “이번 사태가 정보보호 차원에서는 일종의 ‘백신’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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