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4조원대 국책사업인 호남고속철도 건설 입찰 과정에서 담합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1심에서 실형 또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던 건설사 간부들이 2심에서 일제히 벌금형으로 감형됐다.
재판부는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행정처분을 받았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법처벌을 행정처분으로 대신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부터 “담합 규모에 비해 지나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부(부장 성수제)는 이 사건 관련 실무자 10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2명에 선고된 징역1년과 집행유예 2년을 벌금 5000만원으로 감형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감형 이유 중 하나로 “담합 사건으로 인한 막대한 과징금 부과”와 “과거 벌금형을 초과해 중하게 처벌받은 전력이 없음“을 들었다.
14개 건설사 모두와 건설사 임원 10명이 항소한 가운데, 징역형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된 2명을 제외한 8명은 1심대로 벌금형이 유지됐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호남고속철도 입찰 과정에서 담합한 28개 건설사를 적발해 이중 14개 건설사와 임원들을 검찰에 형사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 건설사와 임원들이 2009년 6월 호남고속철도 노반 신설공사 13개 공구 공사에 참여해 전체 공구를 분할해 낙찰받기로 공모한 혐의(건설산업기본법및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위반)로 이들을 지난해 11월 기소했다.
조사결과, 건설사들은 각 공구별로 낙찰 예정자를 정하고 다른 입찰 참가자들은 들러리를 서는 것을 합의한 뒤 이를 실행에 옮겼다. 건설사 임원들은 카페에서 모임을 갖고 사다리타기를 통해 투찰률을 합의한 뒤 결정된 금액대로 실제 입찰에서 써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항소심의 감형 이유에 대해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점규제법 입법 취지에 어긋난 것으로, 당초 이 법은 과징금을 행정부로부터 받고, 사법적인 처벌을 또 사법부로부터 받으라는 것”이라며 “과징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조 단위 담합을 한 행위자들에게 천만원 단위 벌금을 선고한다는 것은 솜방망이도 이런 솜방망이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징금은 (행정적 제제 수단으로) 사법적 처벌과 별개인 것이 맞고 그래서 벌금을 과징금과 별도로 내린 것이다. 미국은 부동산중개료 담합처럼 작은 규모도 실형 사례들이 있다. 건설담합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인데 명백한 담합마저 솜방망이 처벌하는 것은 (사법부가)스스로 권위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국민에게 체감되는 것은 과징금이든 벌금이든 돈이 나가는 것은 모두 똑같다”며 “양형을 결정할 때 과징금이 어느정도 부과 됐는지를 법관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과징금의 임의 감면도 문제로 지적된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당초 이 사건 관련 1조7589억원의 과징금을 산정했다. 이후 조사과정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부분 기업에 20% 감경조치를 취하거나 재무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나 1ㆍ2순위 자진신고 등의 이유로 50%에서 100%까지 과징금을 면제해줬고, 최종 과징금은 2921억원으로 줄었다.
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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