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권의 급변 사태를 두고 러시아와 미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조기 대선과 대통령 권한 축소를 위한 개헌 등 타협안에 서명한 뒤 22일 수도 키예프를 빠져나와 남부 크림반도 발라클라바 사저에 머무른 뒤 외국으로 도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최소 75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다.
권력을 장악한 친서방 성향의 야권 인사들은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신임 의회 의장을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임명했으며, 오는 5월25일 조기 대선일까지 정국 안정을 위해 25일 과도 정부를 세우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야누코비치의 실각을 서둘러 공식화하고, 친서방 세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도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키니 대변인은 임시정부를 공식승인한다는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 의회가 합법적으로 새로운 의장을 선출하는 과정을 지켜봤으며 정국을 통제하고 정부 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도록 이끄는 노력을 지지한다”며 사실상의 지지를 표시했다. 또 기술관료적 연정을 구성해 조기에 대선을 치러야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대선 이후 새 정부와 협의해 우크라이나의 안정을 위한 경제적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러시아는 친러 대통령이 야권이 장악한 의회에 의해 축출된 데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24일 소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 기능 중인 국가기관들의 합법성은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며 “검은 마스크를 쓰고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든 채 키예프를 박살내고 있는 사람들을 정부라고 인정한다면 러시아는 그러한 정부와 협력하기 어렵다”며 반정부 시위세력의 불법점거로 몰어붙였다. 그는 또 투르치노프 의장의 대통령 권한대행을 인정한 EU에 대해 “본질적으로 반란의 결과를 합법적인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정신 착란으로 보인다”고 격하게 비판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지난해 말 양국 정상간에 합의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가 30%할인에 대해서도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반정부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야누코비치를 도와 무력 진압계획을 짰다는 문건이 야누코비치의 저서에서 발견돼 반러 정서에 불을 더욱 지필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크라이나 의회는 야누코비치 통치 아래에서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인정한 법률을 폐지해 버렸다. BB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인구비율은 동서로 갈라져 크림반도를 비롯한 동남부에선 50%가 넘는다.
크림반도에선 서부 지역과 달리 중앙 의회를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24일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크림반도 동쪽 항구도시 케르치에선 러시아계 주민 수천명이 의회의 권력 장악에 반대한다며 시청 청사에 걸려있던 우크라이나 국기를 내리고 러시아 국기를 대신 게양하는 일도 있었다. 크림반도에는 러시아계가 전체 주민의 58.5%를 차지해 우크라이나계(24.4%)를 압도한다. 오는 5월 대선 이후 정권 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자치지역인 크림의 정치불안은 계속돼 동서 갈등의 정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있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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