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렛
오늘도 어제 같고, 오늘 만나는 이들을 내일 또 보게 되는 게 우리네 보통의 삶이다. 대개는 사소하며, 특별할 것 없고, 남다를 것도 별로 없는 나날의 일상.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각하지 못하고 보내 버리는 시간과 날들은 어쩌면, 매 순간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 ‘스타렛’<사진>(감독 션 베이커)은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특별한 만남과 발견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별 볼 것 없고 기대할 것 없었던 삶에 찾아온, 뜻밖의 만남과 그로 하여 맞은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발견’을 기다리던 것은 낡고 오래됐으며 지극히 평범한 ‘물병(보온병)’ 하나다. 마당 앞에 펼쳐 놓은 벼룩시장에서 80대의 노파가 팔고, 20대의 젊은 여인이 샀다. 1달러로 거래된 이 물병 하나가 두 사람의 인생 한 순간을 남다르고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젊고 매력적인 여인은 ‘제인’(드리 헤밍웨이 분)이다. 캘리포니아 샌 페르난도 밸리에서 ‘스타렛’이라는 이름의 수컷 치와와를 키우며 동료의 2층 집에 세들어 살고 있다. 1층에 사는 주인 남녀 커플과 제인은 함께 마약을 하고, 함께 어울려 즐기는 청춘들이다. 별 생각 없이, 큰 고민 없이, 오늘 하루 주어진 일을 하고, 그 댓가로 집세를 내고 차 임대료를 충당하는 그저 그런 삶.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자신의 방을 꾸밀 겸 동네의 벼룩시장을 찾고 그곳에서 까다롭고 퉁명스러운 80대 여성 ‘세이디’(베세드카 존슨 분)으로부터 물병 하나를 산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물병을 열고 보니 거액의 지폐 묶음이 여럿 담겨져 있었다. 제인은 세이디를 다시 찾아가지만, 자신이 판 물건에 지폐 묶음이 든 줄 까맣게 모르는 노파는 제인이 말 붙일 틈도 없이 “물병은 환불해 줄 수 없다”며 문전박대다. 그래도 제인은 자꾸 세이디를 찾아가 말을 걸고, 우연을 가장해 마트에서 오는 길을 동행하기도 한다. 알고 보니 세이디는 남편과 사별한 후 가족도 없이 오랜 동안 홀로 지내왔다. 유일한 낙은 일주일에 한 번 동네의 빙고 게임장을 찾아 돈을 걸고 숫자를 맞춰보는 일. 집에, 마트에, 빙고장에 불쑥불쑥 찾아와 호의를 보여주는 제인에게 세이디는 점차 익숙해지고, 낯을 익힌 만큼 곁을 조금씩 내준다. 그렇게 거액의 지폐 묶음에 대한 사실은 여전히 비밀에 부친 채 제인은 세이디와 우정을 쌓아간다.
영화는 20대와 80대, 손녀와 할머니뻘인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타인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쿨’하고, 섬세하며, 따뜻하게 그려간다. 다른 사람을 향한 호기심과 낯선 이와의 만남으로 인한 당혹스러움, 두려움이 동반된 설렘, 익숙함과 함께 찾아온 호감, 좋아 한다는 감정에 뒤따르는 책임감과 부담감.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과장 없으나 매우 흥미진진하게 묘사된다.
영화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제인의 직업과 세이디가 보내온 외로운 삶의 면면은 그들이 맺은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과연 제인이 세이디에게 보여주는 호의와 호감은 물병 속에 들었던 돈을 가진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일까, 진심 어린 연민과 애정 에서 비롯된 것일까. 세이디는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영화의 마지막은 여운이 길다. 헤밍웨이의 증손녀인 드리 헤밍웨이의 매력도 눈길을 사로잡지만, 이번이 첫 연기라는 85세의 베세드카 존슨이야말로 어떤 대배우 이상의 명연기을 보여준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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