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6년 싱어송라이터 이상은…15집 ‘루루’ 발표
작사 · 작곡 · 편곡 · 사운드메이킹 등 앨범작업 집에서 홀로 해낸 첫 작품
자기 음악세계 만드는게 너무 힘들어 일본에선 별보고 울기도 많이 울어
30대엔 작사 · 작곡에서 독립하고 40대에 누구의 도움없이 온전하게 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은 여성들이 갖고 싶어 하는 패션 아이템의 하나로 인기 복제 대상이기도 하다. 텍스처가 올올이 드러나는 트위드 짜임의 특성상 직물은 얼핏 까끌까끌해 보이지만 부드럽고 신축성이 뛰어나 활동에 편하다. 오래 입어도 질리지 않고 클래식하면서도 청바지와도 잘 어울리는 묘한 반전이 있다. 꺽다리 가수‘담다디’의 주인공, 26년차 이상은의 목소리는 그렇다. 까실거리는 중성적 목소리는 세월의 거친 바닥을 쓸고 통과하면서도 볼에 스치는 5월의 상쾌한 한 줄기 바람처럼 시원하고 한결같다. 그 소리는 현실의 짓눌린 무게를 떨쳐내는 가벼움과 부드러움이 있다.
‘무중력 목소리’의 주인공 이상은(44)이 15집 앨범 ‘루루’를 냈다. 4년 만에 나온 새 앨범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15집을 낸 것은 그가 처음이자 비로소 아티스트로서 완전독립공화국을 세운 것이다. 이번 앨범은 이상은이 작사, 작곡, 편곡, 사운드 메이킹 등 앨범작업 일체를 홈메이킹으로 홀로 해낸 첫 작품이다.
“그냥 왜 만화책 보면 20권까지 나오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하나 하나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해온 결과인 것 같아요. 이제 주방에 들어가서 칼국수를 썰게 된 거죠. 사운드 메이킹도 맡기지 않고 실제 해보니까 쉽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제 자립을 했구나 그런 생각에 뿌듯해요.”
30대에 작사, 작곡에서 독립했다면 그는 40대에 비로소 누구의 도움 없이 온전하게 선 것이다.
이번 앨범은 ‘태양은 가득히’ ‘기차여행’ ‘캔디캔디’ ‘1985’ ‘무지개’ ‘들꽃’ ‘인생은 아름다워’ 등 환하고 편안하다.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온 이가 가진 확신을 담은 곡 ‘태양은 가득히’(‘언제나 밝을 곳을 봐요/어둠은 빛을 이길 수가 없어요/아무리 작은 촛불 하나라 해도/내 마음속엔 태양이/가득해요’)를 비롯, 자신의 얘기인 듯 톡톡 튀는 캔디 송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요/먹구름 저 너머에는/맑은 햇빛이 있으니까’(‘캔디캔디’), 추억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여유로움을 담은 ‘기차여행’과 ‘무지개’등 빈티지풍의 따뜻한 감성이 녹아 있다.
40대 중반 싱글 여성이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노래하는 이유가 뭘까.
“싱어송라이터는 개성이 강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솔직해야 한다고요. 일본에서 작업할 때 프로듀서가 그러더라고요. 우울한 얘기라도 네 얘기를 하라고. 30대까지는 내면에 우울함이 있는 게 괜찮았고 그게 멋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40대 들어서니까 우울할 일이 없네요. 어렸을 때는 상처도 많이 입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는데 지금은 제가 봐도 제가 너무 처리를 잘하는 거예요. 요즘은 신기할 정도로 우울하지 않아요. 나이 40을 넘어서부터 그런 거 같아요.”
이번 앨범에는 이전 14집에서 보여줬던 실험적인 일렉트릭 사운드의 질감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은 특유의 어쿠스틱 분위기와 나직나직한 소리, 아련함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14집은 그에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컴퓨터 시퀀싱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처음 적용한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호평과 일렉트릭 사운드 느낌이 낯설다는 반응이 엇갈렸다.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싶은 저로선 조심스럽더라고요. 이번에는 ‘다시 요리해드리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기계적인 느낌이 덜 나게.”
평단의 이번 앨범 반응은 좋다.
“좋아해주셔서 다행이에요.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랄까. 마치 4집 ‘Begin’을 냈을 때 기분 같아요. 출발점에 선 것 같기도 하고.”
그가 26년 동안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건 스스로 과제를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는 습성 덕이다. ‘혈액형 신봉자’인 그는 이를 O형 특유의 성격으로 이해했다.
아픔이 있어도 안에서 스스로 ‘나는 해낼 거야’ 다짐하며 캔디처럼 꿋꿋하게 견뎌내고 넘어서는 것이다. 이상은은 1988년에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단번에 아이돌이 됐다. “저는 고생 안 하고 데뷔했거든요. 그렇게 2년 활동하다 보니까 나는 음악을 계속하고 싶은데 반짝 스타가 되고 말 것 같더라고요. 당시 라디오가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MBC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후임으로 2년 동안 방송을 진행했거든요. 정말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을 초대해서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상은은 주위의 도움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술학교로 유명한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며 예술적 감각을 익혀 갔다.
음악은 좋아하지만 학교에서 머리 싸매고 공부하기 식으로 하곤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라이브 무대를 갖게 되면서 돌연 유명가수가 됐고 음악공부를 본격화하게 된다. “싱어송라이터 길을 가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혼도 많이 났어요. 자기 음악세계를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일본에서도 별 보고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에게 척박하고 배고팠던 홍대씬 시절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본에 있다가 서른 살 되면서 한국에 왔는데 싱어송라이터나 밴드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공연장이 없어서 옛날 극장 빌려서 공연했어요. 홍대앞이 지금 클럽과 카페촌이 됐지만 그때엔 밭이 있었어요. 너무 가난했고 환경 자체가 갖춰져 있지 않았지요. 황신혜 밴드, 어어부밴드 등 홍대씬 초창기 멤버들은 모두 다 겪은 어려움이죠. 그런 멤버들과 같이 일구면서 그래도 열정은 대단해서 밤새 노래하고 춤추며 ‘내가 문화를 만들 거야’ 하면서 지냈죠. 지금 몇십억씩 번다는 페스티벌 얘기 들으면 격세지감을 느껴요.”
그는 음악 환경이 나아졌지만 한편으론 경쟁이 치열해지고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레코드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디지털 싱글이 쏟아져 나오잖아요. 지금은 그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선 제조원가 낮추면서 또 음악은 품질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해요. 그런 환경에 맞춰서 작업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투자가 없으면 더 힘들죠. 마흔 되면 쉴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길 닦아가는 게 O형의 팔자인가 보다”라는 이상은의 꿈은 오직 하나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오직 하나인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윤미 기자/,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일본서 사라진 인플레 ‘명목 앵커’…물가·엔화에 중요한 이유 [츠토무 와타나베]](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1/news-p.v1.20260816.209013b3297d4c92ab32710d529f3877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