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자 첩보수집 등에 관한 규칙’에 한계 지적 경찰 곤란 겪는데…관련법 3년째 국회서 ’낮잠‘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30대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트렁크 살인’ 용의자 김일곤(48)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우범자 관리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경찰이 우범자들의 첩보를 파악할 때 우범자들이 이를 따라야 할 의무조항이 없어 경찰의 첩보 활동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실형을 받고 나온 전과자를 대상으로 범죄 전력과 재범 위험성 등을 평가해 우범자로 지정ㆍ관리한다. 우범자 관리 대상은 조직폭력ㆍ살인ㆍ방화ㆍ강도ㆍ절도ㆍ강간ㆍ강제추행ㆍ마약, 8개 죄종에 한정된다.
경찰이 교도소 측으로부터 전과자의 출소 통보를 받으면 경찰서 형사(수사)과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심사위원회를 열어 우범자로의 편입 여부와 등급을 결정한다. 조직폭력배는 형사가, 나머지 우범자는 지구대와 파출소 경찰이 첩보 수집을 담당한다.
김이 우범자로 지정돼 경찰이 관련 첩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했더라면, 김은 지난달 경기 고양에서 한 차례 여성 납치에 실패하고 재차 이달 납치 살인을 저지르기 전 검거됐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김은 2013년 3년 출소 당시 교도소 측이 출소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아 우범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설령 김이 우범자로 지정됐더라도 납치 살인을 예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우범자 동향 파악이 ’비(非)대면 간접 관찰‘ 방식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즉 멀리서 지켜보는 수준에 그쳐 우범자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우범자 첩보 수집에 관한 규정인 ’우범자 첩보수집 등에 관한 규칙‘이 경찰 내부 훈령에 불과해 첩보 수집 활동에 강제력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우범자가 주거지에서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경찰은 우범자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
규정상 경찰은 우범자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거나 통신 수사를 통해 우범자의 위치를 파악할 권한이 없다. 지난해 관리 대상 우범자 4만670명 중 10.8%에 달하는 4374명이 소재불명자로 처리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경찰은 우범자 첩보 수집의 법적 근거로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나온 ‘경찰이 치안정보를 수집ㆍ작성ㆍ배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고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경찰 직무의 범위를 정의한 조항으로, 우범자 첩보 수집의 법적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경찰은 ‘우범자 첩보 수집 규칙’의 제6조 제4항, ’우범자의 인권을 최대한 배려해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고 우범자의 명예나 신용을 부당하게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란 모호한 규정에 따라 우범자의 동향을 파악하는 셈이다.
이 같은 동향 파악은 반대로 우범자들의 인권도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 명확한 규정이 없어 경찰이 무리하게 탐문을 벌이다 보면 우범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범자 첩보 수집 규칙’을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반영하고 우범자의 강제 수용 조항을 담은 개정안이 2012년 8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3년째 처리가 안 되고 있다. 이찬열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은 ’우범자는 경찰의 주거 방문ㆍ질문 등 정보 수집 활동에 성실히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경찰관이 법에 근거해서 적합한 직무 행위로서 첩보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사생활 보호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어 규칙에 근거해 우범자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첩보를 얻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우범자를 관리하기보다는 우범자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범자의 재범을 막는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우범자가 재범하게 되는 이유 중 사회 부적응 때문이 많다”며 “우범자 관리가 오히려 사회 적응을 실패하게 만들어 재범의 가능성을 높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test100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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