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박은영 아나운서, 화학제품 없이 살아보니…
“순면 목욕가운 입고, 콩가루 · 밀가루로 분칠하고… 생전 처음 민낯으로 방송…천연 화장품 전도사 됐어요”
‘방송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 아나운서가 민얼굴에 목욕가운을 입고 시청자와 만났다. KBS의 대표 아나운서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리고 있는 박은영 아나운서다. 박 아나운서는 지난 한 달간 ‘여성특집’으로 방영된 KBS 2TV ‘인간의 조건’을 통해 개그우먼 김숙 김신영 김지민 박지선 박소영 등과 함께 안방을 찾았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화학제품 없이 살기’. 첫 회분에서 미션을 받아든 박 아나운서는 대뜸 100% 순면 목욕가운을 입고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길을 달려 방송국으로 향했다.
‘인간의 조건’은 김준호를 비롯해 KBS의 간판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특정 미션 한 가지를 주문한 뒤 수행하는 과정을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담은 프로그램이다. 이들이 수행하는 미션은 다양하다. 휴대전화 없이 살기, 쓰레기 만들지 않기, 자동차 없이 살기 등이 그것.
최근 ‘여성특집’ 편에 투입됐던 박 아나운서도 기존 프로그램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미션 수행에 착실히 임했다. 난관은 주제가 너무도 광범위했다는 데에 있었다.
화학제품의 사전적 의미는 ‘천연으로는 없는 물질로 화학산업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물질 또는 제품’을 뜻한다. 이 같은 의미대로라면 현대인들의 삶 속에 화학제품이 아닌 물질은 없었다. 너무도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주제에 박 아나운서와 출연 개그우먼들은 ‘화학제품 없이 살기’ 미션을 받아들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사실 화학제품 없이 산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잖아요. 매우 광범위해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차도 타지 말고 걸어다니고, 휴대폰 사용도 하지 말아야 하나?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인간의 조건’은 원래 멤버들을 숙소에 부른 뒤에 주제를 정해주는데 ‘화학제품 없이 살기’ 편에선 먼저 미션을 준 뒤 집에서부터 준비를 시작해 집합시키더라고요. 그만큼 힘든 주제였어요.”
일단 입고 신고 바르는 것부터 제약이 따랐다.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에게 일종의 통제를 가하는 것으로 미션을 수행하게 하는데, 사실상 어느 정도까지 미션에 임하느냐는 개개인의 몫이다.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박 아나운서와 개그우먼들은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보자고 목표를 뒀다. 한 달간의 방송을 막 끝내고 최근 전화인터뷰를 통해 만난 박 아나운서는 당시를 떠올리며 “미션의 주제가 ‘화학제품 없이 살기’였지만 제작진의 의도가 화학제품을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건 아니었을 것”이라며 “다만 사용을 줄이고, 화학제품이 우리에게 유해하다는 걸 인지하고 사용하자는 취지였다고 생각해 필요한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한겨울 촬영에서 코트나 점퍼 대신 화학제품이 섞이지 않은 순면 소재의 목욕가운을 입고 등장했던 것을 시작으로 멤버들의 합숙소에서 화학제품을 수거하는 본격적인 작업을 통해 박 아나운서와 개그우먼들의 ‘화학제품 없이 살기’는 출발했다.
사실 제작진이 이번 미션을 준비하며 ‘여성특집’ 편을 마련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성년이 된 여성 대부분은 어지간하면 매일 아침 화장대 앞에서 자신의 얼굴에 화학제품을 바르고 있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이다. 매일같이 사용하는 ‘화학제품’, 즉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 대체품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생활이 가능한지를 두꺼운 방송화장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여성 연예인들을 통해 담아보고자 했다는 의도가 방송 내내 비쳤다.
메이크업제품의 사용이 금지되니 방송 스케줄 일정이 빽빽하게 잡혀 있는 박 아나운서를 비롯한 여자 연예인들은 난감해했다. 짙은 색조화장은 물론 인조 속눈썹도 퇴출이었고, 스킨로션 등 기초화장품 사용에도 제약이 따랐다. 특히 미녀 개그우먼으로 손꼽히는 김지민은 거의 울상이 됐다. 파운데이션을 대신해 콩가루나 밀가루로 분칠을 하고, 문방구에서 구입한 연필이나 숯으로 눈썹을 그렸다. 입술에 색을 입히기 위해 카네이션이나 장미꽃과 같은 붉은 계열의 꽃을 빻아 꿀을 섞어 립밤을 대신하기도 했다. 어설픈 화장으로 민얼굴 신세는 면했지만 미녀 개그우먼 김지민은 방송 내내 한숨에 눈물까지 비쳤다.
박 아나운서는 꽤 담담하게 미션에 임했다. 2007년 KBS 33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래 단 한 번도 민얼굴로 방송에 임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KBS의 대표 미녀 아나운서로 자리 잡은 박 아나운서는 이 방송에서 민낯을 보인 이후 “시집 어떻게 가냐”는 직장 동료의 걱정도 들었을 정도다. 3년간 진행했던 ‘연예가중계’에는 밀가루와 숯가루 등의 천연제품으로 화장하고, 순면 원피스를 구해 입고 생방송에 얼굴을 비쳤다. “마지막까지 천연신발은 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정도였다. 박 아나운서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은 가격 거품이 너무 심한 데다 파라벤 등의 유해 성분이 들어가 몸에도 해로운데 몇 가지 제품만 간단하게 섞으면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가지 제품만 발라도 보습이 뛰어나 추천하고 싶었다”며 “천연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천연화장품 박물관도 추천했다.
‘인간의 조건’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박 아나운서는 방송 이후 ‘그린 라이프’를 실천하는 대표 에코 아나운서로 불리게 됐다. 방송 이전의 ‘그린 라이프’라면 종이컵 등의 일회용품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정도였지만 ‘인간의 조건’ 출연 이후 유통기한이 지나치게 길었던 화장품의 성분을 직접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주위에선 “천연화장품은 정말 쓸 만하냐”, “효과가 좋냐”, “천연세제는 어떻게 만드냐” 등의 질문도 수시로 받는다. 박 아나운서는 그럴 때 특히 “귤 껍질을 물에 불려 화장실 청소나 기름때 제거 작업을 하면 효과가 굉장하다”고 전하곤 한다. ‘쌀뜨물 세안’은 말할 것도 없다.
“문명의 이기를 편안히 누리고 살다가 그것을 걷어낸 생활을 해보니 불편하긴 했어요. 불편하지만 시도하지 못할 일은 아니더라고요. 요즘엔 친환경 소비나 가치 중심 소비가 새 화두로 떠올랐잖아요. 그걸 이용해 친환경과 천연, 유기농이 아닌데도 가격만 부풀려 이용하는 사례도 많은데 거창한 ‘에코 라이프’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제품의 성분을 한 번씩 확인해보는 것만으로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넓게는 환경을 돌아보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건강을 돌아보는 걸로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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