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지는 12일엔 바뀌는 것이 많다. 증시에선 개장 시각이 한시간 늦춰진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시각도 순연된다. 경찰차는 ‘수능 택시’가 되고, 공무원 출근 시각은 10시로 조정된다. 영어 듣기 시간 때엔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된다. 익숙한 기괴함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대입 때문에 증시 개장이 늦춰지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추구하는 한국이 보이는 ‘유니크’함이다.

한은의 금통위 금리 결정도 그렇다. 한국의 금리 인상 여부는 외신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는 주요 뉴스다. 그런데 수능은 금통위 개최 시각마저 늦춘다. 괴력이다.

유난한 사회적 반응에 대한 ‘바깥’의 시선은 싸늘하다. 지난해 이맘때쯤 CNBC는 ‘한국에선 좋은 대학이 고위공무원과 재벌 기업의 입사를 보장한다’고 전했고, AFP통신은 ‘한국이 대입을 위해 침묵에 빠졌다’고 했다. ABC뉴스는 ‘기업들이 업무시간을 늦춘다.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된다’고 보도했다. 뉴스는 ‘새로운 것(뉴스)’이다. 우리에겐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들에겐 새롭다는 얘기다.

두말할 나위 없다. 수능날 나라가 멈추는 것은 수능이 성인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 짓는다. 아름다운 단어 ‘연(緣)’이 한국에서 사용되는 맥락은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 등 부정적인 것 투성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라왔고, 그렇게 아랫세대를 길렀다. 그래서 우리에겐 익숙함이 됐고, 그래서 그들에겐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는 다섯 계층이 나온다. 계층은 태아 때 결정된다. 알파부터 입실론까지다. 알파는 사회지도층이, 입실론 계급은 하인이나 단순 노동자가 된다.

한국적 호들갑의 결정판인 수능날은 한국의 ‘계층 결정 날’이다. 소설처럼 태아가 아닌 19살 언저리에서 계층이 결정되니 다행이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한국은 ‘멋진’ 것 같진 않고, 그냥 ‘신세계’ 쯤으로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