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가 스크린에 부활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대호’ 속 호랑이는 꽤 만족스럽다.
물론 이 호랑이가 철저히 CG(컴퓨터 그래픽)의 산물임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호랑이가 실제가 아닌 CG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의 이물스러움이 몰입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몸무게 400㎏, 길이 3m80㎝의 대호는 139분 내내 비장한 존재감을 뽐낸다.
박훈정 감독의 영화 ‘대호’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와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 대호를 노리는 일본군과 포수대의 욕망이 뒤엉키며 빚는 이야기다.
대호는 지리산의 산군(山君)으로 마을 사람들엔 신격화 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다. 포수대에 새끼들을 잃고 폭군으로 돌변하지만 동시에 보은을 아는 영물이기도 하다. 또 일제에 의해 단절된 조선의 전통적 가치와 훼손된 영토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명포수 천만덕은 “잡을 놈만 잡는 게 산에 대한 예의”란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 포수다. 그마저도 총을 내려놓고 호랑이 사냥꾼으로서의 업을 끊으려 한다.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 분)에게 살육으로 인한 업보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호랑이 사냥꾼, 공존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쓸 데 없는 살생을 금기시하는 둘의 존재는 기묘하게 닮았다.
한편 포수대 우두머리인 구경(정만식 분)은 대호를 잡기 위해 혈안이다. 그는 대호에게 맺힌 원한으로 호랑이 사냥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대호를 잡기 위해서라면 일본군마저 끌어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구경의 욕망은 오로지 복수다. 그의 욕망은 전리품으로서 호랑이 가죽에 매혹된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 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탐욕과 복수, 이들의 욕망은 쉽게 꺾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직선적이고 물러남이 없어 만나는 지점마다 충돌한다. 마주치는 씬마다 총성이 울리고 포연이 자욱하고 유혈이 낭자하다.
이 단선적인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뚝심 있게 밀고가는 힘은 호랑이의 리얼리티와 배우들의 열연이다. 대호의 움직임에 속도감을 불어넣는 카메라 워크와 귓전을 울리는 묵직한 사운드도 한몫을 담당한다. 눈 덮인 고준봉령, 지리산의 장엄한 스케일도 주연감이다.
‘믿고 보는 배우’ 최민식의 선 굵은 연기는 어김 없이 빛을 발한다. 최만덕의 늦둥이 아들 석이 역을 맡은 성유빈은 능청스러운 연기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가히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구경 역의 정만식은 자신의 필모그라피의 정점에 놓을 만한 인생의 영화를 만났다. 그는 포수라기 보다 집념이고 복수 그 자체다.
다만 영화의 스토리는 극 후반부에 리얼리티를 넘어 선(仙)의 세계로 도약 내지는 비약한다. 이 도약이 다소 어리둥절한 관객도 있을 것이다.
박훈정 감독은 연출자의 변에서 “자연과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했고 예의를 지켰던 시대는, 일제로 대변되는 욕망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종말을 맞는다”며 “호랑이는 어떻게 사라져가게 되었는지, 그 순간을 들여다 보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존재들과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호’가 남긴 영화적 성취는 흥행 여부를 떠나 한국 영화사에 예사롭지 않은 족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관객들이 이 비장한 이야기에 어떻게 응답할지도 관심이다. 오는 16일 관객들과 만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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