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 반죽에 팥소넣은 서민의 친근한 먹을거리, 日 전통 단팥빵 영화 ‘앙’서 소개 커스타드 크림 등 다양한 변신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줄거리가 아닌 이미지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스토리 전개에 이렇다 할 기승전결이 없다거나, 이야기의 굴곡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강렬한 이미지가 작품을 지배할 때 그렇다.
올해 우리나라에도 개봉한 일본 영화 ‘앙-단팥 인생 이야기’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폭력 전과가 있는 중년 남자가 운영하는 일본 전통 단팥빵 가게에 팥을 잘 쑤는 한 노년 여성이 찾아와 같이 일하면서 가게가 번창하기 시작했는데, 노년 여성이 한센병 환자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쇠락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평면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단순하다. 등장인물들 역시 무척이나 과묵하다.
박진감 넘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보다가 졸아도 몇 번은 졸았을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기억을 맴도는 것은 그 탁월한 영상미 때문이다. 감독은 등장인물의 말소리를 줄이는 대신 햇빛, 바람소리, 하늘, 초목 등의 이미지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정서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방식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작품의 주된 소재인 일본 전통 단팥빵 ‘도라야끼(どらき)’의 이미지 때문이다. 커다란 솥 한가득 팥소를 끓이고, 까만 후라이팬에 밀가루 반죽을 굽고, 노랗게 익은 도라야끼에서 김이 모락 나는 장면들은 스크린 바깥으로까지 그 달콤한 냄새가 전해질 것처럼 매혹적이다. 더불어 극중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상처를 안고 살았던 극중 인물들을 한 데 묶어 주었듯이, 관객에게도 모종의 위로받는 느낌을 전달해 준다. 극장을 나오면서 ‘어디 도라야끼 파는 데 없나’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들 정도다.
도라야끼는 밀가루, 계란, 설탕을 섞은 반죽을 팬케이크처럼 둥글납작하게 구워 두 쪽을 맞붙인 사이에 팥소를 넣은 화과자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도라야끼는 그 모양이 타악기 ‘징(일본어: どら)’과 닮아서 현재의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다른 설로는 한 사무라이가 농부의 집에 징을 놓고 갔는데 농부가 그 징으로 팬케이크를 구운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초 빵 하나를 반으로 접고 그 사이에 팥을 넣은 형태였지만, 1927년 무렵 원조 도라야끼의 가게로 꼽히는 일본제과점 ‘우사기야(うさぎや)’가 빵 두 개를 포갠 형태로 만들어 팔면서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가 보편화됐다고 전한다.
1913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우사기야는 현재까지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꼽히는데, 가게가 위치해 있는 도쿄 우에노 공원 주변에는 지금도 서민들의 정서가 짙게 남아있는 전통 일본 제과점이 많다. 얇은 밀가루 반죽으로 팥고물을 싼 킨츠바(きんつば)야끼, 한국의 가래떡과 비슷한 단고(だんごㆍ찹쌀가루 반죽을 둥글게 빚어 찐 것) 등이다. 이런 소박한 먹거리들은 서민문화가 융성했던 에도시대에 생겨났다고 한다.
도라야끼의 맛은 촉촉한 빵과 부드럽게 삶은 팥고물이 하나가 되어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묘사지만, 훌륭한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에는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는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서민들의 디저트였던 만큼 화려하다기보다는 질박하고, 그래서 더 따스하다. 이름값을 빼고 보면 오히려 실망스럽다고 느끼는 이도 존재할테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 콘텐츠와 먹을거리를 엮어 해외에 소개하는 작업을 해왔고, 이는 일식의 현재 지위를 구축하는 배경이 됐다. 한식 세계화를 추구하는 국내에서도 문화 콘텐츠를 통한 시도가 많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저런 이유로 도라야끼는 이제 서구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먹을거리가 됐다. 백화점 식품관이나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물론이고, 개인이 내는 소규모 점포에서도 판매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에는 팥 대신에 커스타드 크림, 초콜렛, 땅콩이나 과일잼 등을 넣어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된 제품도 많이 출시됐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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