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지난해 온라인을 강타한 ‘헬(Hell)조선’이란 키워드에는 반(反)기업 정서가 깔려 있다. 유례 없는 취업난과 확신 없는 미래를 달관한 K세대의 표현법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이 사라진 자리엔 ‘될 사람만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 대신했다. 이른바 ‘금수저’에 밀려 기회조차 얻지 못한 소수의 주장은 온라인 공간에서 분노의 화살이 됐다. 표적은 대기업이다.
최근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문구를 내건 기업의 신입사원 희망퇴직 소식은 K세대의 분노를 키웠다. 이들은 겉과 속이 다른 대기업의 이중적인 얼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업들은 몸을 웅크렸다. 대신 귀를 열었다. 놀이터를 만들고 기다림의 미덕을 키웠다. K세대에게 공감의 장을 만들고 미래를 함께 열자고 나즈막히 말을 걸었다. 냉소가 지배한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시 뜨거운 불을 지폈다. 젊은층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가상의 공간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K세대의 소통 방식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취업난과 스펙쌓기 전쟁 속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조차 할 대상이 없는 이들의 고충을 듣기 위한 최적의 접근법인 셈이다. 훈계식의 일방적 화법이 아닌 즐거움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부드러운 권유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광고다. 광고의 꽃이라 불리는 연예인이 아닌 실제 청년창업가나 젊은층을 채용해 유쾌한 도전기를 소개하고 추억을 회상하며 ‘연결’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소소한 공감대를 통해 젊은 층이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에 도전정신을 일깨우고 기업이 가진 고유한 기술을 전파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과거 ‘착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캠페인 광고는 자취를 감췄다. 한 걸음 뒤에서 꾸준한 노력을 알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소통은 SNS에서 이뤄진다.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촉발된 공유 코드는 카카오스토리와 각종 커뮤니티로 확장했다. 더욱 광범위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즉 확성기로 떠벌리는 것이 아닌 대상을 정해 귓속말로 속삭이는 인상이다.
기업들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채널과 카카오스토리 계정의 특징은 ‘유쾌한 자유’다. 드라마, 영화, 음악 등을 결합한 이종(異種) 콘텐츠는 기본이다. 매체와 큐레이터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실험적인 화법이 등장했다. 예컨대 카드뉴스와 이슈를 제공하는 삼성 페이스북 채널은 310만명이 선택한 거대 서포터가 됐다. IT 꿀팁과 빠른 제품 정보로 마니아층에게 만족감을 선사한 LG모바일 페이스북 채널엔 299만 팔로워가 몰렸다. 큐레이터 못지않은 재미와 값진 정보들로 두 토끼를 잡은 셈이다.
기업의 탁월한 선구안이 통한 사례도 있다. ‘핫 아이템(Hot item)’ 걸그룹 AOA의 설현 브로마이드로 화제를 모은 SK텔레콤은 페이스북 대문을 아예 설현으로 장식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자동차 매거진 수준의 콘텐츠와 깨알 같은 이벤트로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서 약진 중이다.
기업들의 SNS 소통법의 공통점은 실시간 피드백에 빠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적극적이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K세대에게 “놀자”는 이야기보다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식이다. 이른바 ‘꺼리’를 제공하고 이슈로 확대되면 더 많은 이들이 발도장을 찍는 ‘성지순례’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업 SNS 채널들은 별도의 운용팀을 두고 있다”며 “최신 유행코드와 소위 뜨는 콘텐츠에 밝은 젊은 관리자들을 채용하고 표현의 자유를 부여한다”고 귀띔했다. 수직적인 명령하달식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자유로움 속에서 창조적이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공유를 앞세운 SNS와 달리 정보 제공의 성격이 강한 웹툰과 블로그, 마이크로사이트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참여형 콘텐츠가 빠지지 않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명 웹툰 작가의 작품을 연재한 블로그와 ‘도전은 즐거움’이란 주제의 웹드라마 등 세대간 갈등 극복을 위한 다양한 소통이 이어지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청년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핵심인 만큼 개성 넘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공 키워드는 ‘자유’다. K세대가 구속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성향이 강해서다. 여러 겹으로 순화한 TV 영상이 아닌 ‘무삭제’ 유튜브 영상을 활용하는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영상을 활용해 개인채널을 운영하는 한 ‘파워 유튜버(Power Youtuber)’는 “온라인 공간은 활짝 열려있지만, 사용자들은 예전보다 폐쇄적이고 더 개인적인 맞춤 콘텐츠를 원한다”며 “TV와 다른 자유로운 ‘취향저격’ 콘텐츠를 발굴하고 제공해야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방식도 여전히 활발하다. 오프라인, 즉 현장에서 ‘기(氣)살리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직원들이 대학 캠퍼스를 직접 찾아 대학생들의 진로 고민을 함께 이야기하고, 방과 후 교실과 자유학기제 수업을 활용해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에너지ㆍ제조ㆍ서비스 등 대학 학과에 기업맞춤형 과정을 개설하고 중소벤처기업에 우수인력을 연결하는 선순환 프로그램도 꾸준하게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대기업이 진행한 캠퍼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대학생은 “온라인 콘텐츠는 재미나 눈요깃감에 머무를 수 있는 반면 현장 프로그램은 명확한 미래를 제시한다는 것이 큰 차이”라며 “대학생들이 관심이 있는 직무 관계자나 유명인사가 강단에 오르면 느끼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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