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론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진 화두다.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이 운동장에서 보수 세력은 심지어 자책골을 넣기도 어렵다.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패하기 어려운 구도다.

한국 정치의 운동장은 왜 기울어졌을까. 관중(유권자)의 고령화와 지지 관중 수의 격차가 그 원인이다. 고령화로 인해 유권자들의 보수화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고, 영남권 의석수(67석)는 호남권(30석)보다 37석이나 많다. 영남권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정당 새누리당은 속된 말로 일부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호남권 기반의 진보정당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으로서는 속이 탈 일이다. 이 억울한(?) 구도를 바꿔 관중들에게 어필해 보자는 게 문재인 대표의 ‘개혁’,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혁신’이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실패했다. 볼썽 사나운 집안싸움 끝에 결국 안 전 공동대표가 탈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새정연을 필두로 한 야권은 폭풍전야다. 합종연횡이 눈앞이다. 방향키는 안 전 공동대표가 쥐고 있다. 새정연이나 기타 야권과의 통합은 해답이 아니다. 이 카드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울기를 완만하게 할 방안은 뭘까. 현재의 정당 지지율에 힌트가 있다. 여당 40%, 야당 25%, 그리고 지지정당이 없는 부동층이 나머지 35%다. 여당은 보수성향의 영남 기반이다. 야당은 진보성향의 호남 기반이다. 부동층은? 정확히 일치하진 않겠지만, 중도성향의 서울ㆍ수도권 유권자들이 주력이지 않을까. 또 최악(最惡)을 피해 차악(次惡)의 선택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연을 찍은 유권자들도 사정권에 들어온다. 여기에 이제 미국처럼 보수 일변도로 흐르지 않는, 또 이념 프레임에 진저리치는 40, 50대도 넓게 보면 부동층이다.

‘정책 중심의 합리적 중도’. 안 전 대표가 내세워야 할 야권재편의 방향등이다. 합리적 중도 표방은 실리 뿐 아니라 명분도 훌륭하다. 한국 정치의 고질이었던 영ㆍ호남 지역구도를 깨는 발걸음일 수 있다. 새누리당은 보수로, 새정연은 진보로, 그리고 새 세력은 합리적 중도로 나아가는 3자 정립 구도의 모색이다. 지금처럼 두 개의 거대정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하고, 법안을 빅딜하고, 그러고도 어쩌지 못해 식물국회로 전락하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 또 세 정당의 교차적 정책연대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입법활동을 촉진할 것이다.

합리적 중도의 그물은 넓다. 새누리당과 새정연 내 중간지대에 놓인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유승민 의원 등의 젊은 피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정운찬 전 총리 등 원로그룹까지 포획할 수 있다. 운동장 기울기를 완만하게 하는 제3의 길, ‘합리적 중도’가 새 세력이 나아갈 길이다.


pils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