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40대 남성 A씨는 최근 불면 증세에 병원을 찾았다. A씨는 불안장애, 공황장애, 적응장애, 울적불안 등의 진단을 받았다. 본격적인 치료를 준비하던 A씨는 병원비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민간보험회사에서 치료비를 보상하는 실비보험 적용 대상에서 정신과 치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망률 원인 1위는 자살이다. 국내 자살 환자의 70% 이상은 우울증 환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제 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꼴찌 수준이다. OECD 보건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항우울제 소비량(2013년)은 28개 조사 대상국 중 칠레 다음으로 낮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OECD에서 가장 높다.

자살로 인한 사망에는 사망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우울증 치료비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현재 상황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의 약관들을 살펴보면 일명 ‘F코드’로 분류되는 정신과질환 및 행동장애 진료비는 실비보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현직 보험설계사 최모씨는 그 이유에 대해 “우울증으로 인한 자해, 혹은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통 등 인과 관계를 밝혀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보험회사는 정신과 진료를 실비보험 적용 대상에서 빼는 것에 더해 과거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보험 가입을 거절하기까지 한다. 보험회사 측은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며 법적 근거로 상법 732조를 들이민다. 상법 732조는 “심신 미약자와 심신 빈약자의 생명보험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적고 있다.

이에 환자들은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지 않도록 비보험진료를 선택하면서 비용을 부담한다. 혹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신건강의학과 대신 가정의학과나 신경외과 등을 택하기도 한다.

보험회사들이 이처럼 정신과 진료비 청구에 인색한 상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지적받기도 했다. 인권위는 2011년 ‘장애유형별 보험차별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연구’를 통해 “국내의 경우 정신질환 위험성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최대한 보험 가입에 부정적이고 엄격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2013년 4월 가벼운 정신과 외래 상담만 받는 경우를 고려한 ‘Z코드’를 도입했다. 정신과에 방문해 상담만 받고 돌아가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약물을 처방받는 순간 ‘F코드’가 돼 버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대인에게 정신질환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가벼운 약물 처방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며 “자살률이 높아 정신건강 대책이 시급하다고 하면서 정작 치료에는 소극적으로 만드는 지금 상황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상법 732조에 대한 문제제기도 계속된다. 본래 이 법은 의사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적장애인을 피보험자로 하는 사망보험을 허용하면 보험 살해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법 732조가 의사능력이 부족한 장애인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음에도 오히려 정신과 진단을 받은 사람의 보험 가입을 막는 식으로 ‘차별’에 사용되자 법안을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는 ‘법학평론’에 실린 ‘개정 상법 제732조와 장애인 차별’ 논문을 통해 “의사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법정대리인의 조력을 구하는 것이 민법의 기본원칙이고 상법에 다른 보호수단이나 형법 등을 통해 도박보험과 보험살인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임 변호사는 “이해가 충돌한다면 후견법원의 허가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이러한 원칙을 배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도 한국 정부에게 상법 732조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엔 우울증이 질병 중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쉽게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의 하나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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