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진성 기자] 1965년 첫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지난 달 28일 합의된 ‘12ㆍ28 한일협정’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50년 간극의양 협정을 비교분석해야한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우선 공교롭게도 50년 간극의 두 협정의 체결주체인 양국 정상이 모두 한 가족이다. 1965년 체결된 첫 한일협정은 박정희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주도했다. 사토 총리는 아베신조 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친동생이다.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다.
내용 면에서 12ㆍ28 한일협정과 1965년 한일협정은 크게 4가지 점에서 닮았다.
우선 정부가 나서 협상했지만, 일제에 의해 직접 피해를 입은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등과의 공식적인 협의는 없었다.
1965년 협약은 비밀리에 진행됐지만 협상 단계에서 내용이 알려져 전국민적 반대운동에 직면했다. 결국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총대를 매고 협상을 완료했다. 12ㆍ28 한일협정은 공개적으로 진행했지만 ‘선(先) 합의-후(後) 통보’ 식으로 마무리된 점에서 닮았다.
일본 정부가 ‘돈’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점도 50년 전과 똑같다. 한일 양국은 1965년 1차 협정 당시 일본이 한국에 3억달러를 지급하면서 법적 책임을 거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일본에서 10억엔(약 97억원)을 받아 위안부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하자는데 합의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은 기자회견에서 “(10억엔 출연은)도의적 책임이고 법적 책임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점도 변함없다”고 못 박았다.
한일협상에 배후로 미국이 관여했다는 점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1차 한일협정을 앞둔 1962년에 일본 측에 “청구권 문제를 강조하지 말고 일괄타결하라”, “미국의 (한국)개발차관 공여가 협상 타결과 관련돼 있다고 말하라”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당시 한국에서 일어난 한일협정 반대시위에는 ‘미국의 개입을 반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12ㆍ28 한일협정에도 사실상 미국이 개입했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에 맞서기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우선 한일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한일협정 합의문에 ‘최종 협상’이라고 못 박은 것도 1차 한일협정 때와 같다. 1965년 한국 정부가 발표한 합의문을 보면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문제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고 명시했다. 12ㆍ28 합의문에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적혀있다.
결국 위안부 피해자와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스스로 추후 협상의 여지를 닫아버린 셈이다. 여기에는 한일 수교 50주년에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자는 박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
test102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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