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인 황모(47) 씨는 2013년 관리소장과 외부감사 문제로 언쟁을 벌이다 자신보다 12살 많은 관리소장에게 “야, 이 따위로 일할래? 나이 처먹은게 무슨 자랑이냐”라고 말했다. 당시 관리소장실 안에는 황씨와 관리소장만 있었지만 관리소장실 문이 열려 있었고, 문 밖엔 직원 4~5명이 업무를 하고 있었다.

모욕 혐의로 기소된 황씨는 1심과 2심에서 모욕죄가 인정돼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는 황씨의 발언을 모욕적 언사로 보기 어렵다며 지난해 9월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하급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달랐던 이유는 뭘까?

모욕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①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고 ② 모욕적 발언이 불특정 다수에게 퍼질 가능성, 즉 공연성이 있어야 하며 ③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큼 경멸적 표현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

앞선 사례의 황씨는 관리소장을 특정해 발언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당시 현장에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황씨의 발언이 퍼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여기까지는 1, 2, 3심 재판부가 모두 인정하는 사항이다. 그러나 세 번째 요건을 두고 하급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1, 2심은 황씨의 발언에 대해 관리소장을 경멸하는 표현이라고 보고 모욕죄를 인정했다. 반면, 대법원은 “황씨의 발언이 무례하지만 관리소장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까지 떨어뜨릴 만큼 경멸적 표현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즉, 해당 발언이 경멸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재판부마다 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판결도 엇갈린 것이다.

이처럼 하급심과 상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데엔 모욕죄를 규정한 법 조항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이공의 허진민 변호사는 “대법원이 제시한 해석을 기준으로 하급심 판사들이 판결하지만 그 판단도 서로 엇갈리는 걸 볼 수 있다”며 “재판부에서도 그러한데 일반인들 입장에선 어떤 경우에 모욕죄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기란 더욱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법적 결함 때문에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엔 모욕죄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이 청구된 바 있다. 헌재는 해당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재판관 세 명은 소수의견을 통해 “모욕죄 조항은 헌법상 보호받아야 할 표현인 단순 비판과 현실 세태를 빗대어 우스꽝스럽게 비판하는 것까지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어 규제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처벌을 통한 제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모두 형벌로 규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청구인 측 변호인으로 참석했던 허 변호사도 “모욕죄는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로도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라며 “형사처벌의 기준이 피해자의 의지에 달려 있어 악용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욕의 사례가 매우 많고 다양하다. 모욕의 여러 경우에 대응하기 위해 법에서 추상적으로 규정한 측면이 있다”며 “결국 심리할 때 개별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