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평범한 사람들이 주류 빈부격차·취업난·과당경쟁 떠나는 이유도 가지가지 비교없고 시선 신경안써 만족 상당수는 적응실패 유턴도 전문가 “현실도피성 경계를”

#.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헬조선’(hell+조선) 담론이 한국사회를 휩쓸면서 동시에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저)의 주인공 계나(27ㆍ여)의 말이다.

소설 속 계나처럼 그저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최근 늘고 있다. 과거엔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식 교육을 시키려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이민 수요의 상당수를 차지했다면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조차 탈(脫)조선을 꿈꾸고 또 시도한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심화되는 빈부격차, 극심한 취업난,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권위주의와 집단주의 문화 등 이들이 한국을 포기하려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국을 떠나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유럽 등 선진국에 안착한 사람들의 사례는 ‘남겨진 사람들’을 더 유혹한다.

4년전 엄마와 함께 호주로 떠난 최모(35ㆍ여) 씨. 초기에 고생은 했지만 이제 영주권 취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최 씨는 틈만 나면 친척과 지인들에게 이민을 추천한다. 늘 남과 비교하고 주변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쓰는 문화, 모두가 빨리빨리 움직이는 한국과 달리, 호주는 대부분 개인주의적이고 여유를 즐기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덤이다. 최 씨는 “호주에서의 삶이라고 해서 단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받던 수많은 스트레스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엄마와 나의 삶은 너무 행복해졌다”고 했다.

반대도 있다. 한국을 떠난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해외로 나갔지만 ‘적응에 실패해서’, ‘가족과 친구들, 한국 문화가 그리워서’, ‘해외에서의 삶이 한국에서의 삶보다 못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돌아오는 사람들 역시 상당수다.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유럽 현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최모(31) 씨. 권위적 조직 문화 등이 싫어 한국에서도 외국계 기업에 다녔던 최 씨는 결국 그토록 바라던 해외취업에 성공해 3년전 아내와 함께 유럽 삶을 시작했다.

명문대를 나오고 영어에도 능통한 최 씨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최 씨는 “유럽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든 직장인들이 ‘칼퇴근’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여기도 전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며 ”세금은 많은데 월세도 비싸서 돈을 모으기 매우 힘들다. 수준높은 복지 혜택도 나이가 한참 들어서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최 씨는 조만간 한국으로의 유턴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구체적 계획이 없는 현실도피성 유학이나 이민 등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외이주업체의 한 상담부장은 “영어 등 언어적인 부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한국에서와 똑같은 일을 하거나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다”며 “떠나더라도 눈높이를 낮춰 취업을 할 마음의 준비를 갖춘 뒤 떠나야 한다”고 했다.

배두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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