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동안 전국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체감온도를 기록한 서울의 기온은 한추위한다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노르웨이의 오슬로, 핀란드의 헬싱키의 기온보다 낮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이게 끝이 아닙니다. 주말에는 그 이상의 강추위가 몰아닥쳐 다시 한 번 전국을 얼음요새로 만들 예정이라는군요.
날씨예보에 의기소침해져 옷깃을 여미며 거리를 거닐던 기자의 눈에 반가운 게 들어왔습니다. 마른 나뭇가지에 매달려 말라붙은 산수유 열매였습니다. 누군가 거두지 않아 가지에 그대로 매달려 있던 산수유 열매는 여전히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 붉은 기운 너머에는 새로운 계절의 풍경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이 그리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니란 사실에 얼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더군요.
산수유꽃은 불현듯 찾아와 바쁘게 몸을 사리는 봄을 많이 닮았습니다. 봄이 채 무르익기 전에 잎보다 먼저 마른가지를 비집고 피어난 샛노란 산수유꽃은 봄의 한복판에서 문득 새벽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이 같은 산수유꽃의 흥망은 마치 꿈결 같아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꽃대에 희미한 자취만을 남긴 채 사라지는 일도 허다합니다. 매년 봄이면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인 전남 구례군은 수많은 인파로 미어터지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봄의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수유꽃 개개는 뜯어보면 그리 볼품이 없습니다. 꽃망울의 크기는 좁쌀처럼 작은 데다, 만개한 꽃의 생김새 역시 밋밋하기 짝이 없죠. 이처럼 허약한 산수유꽃의 모습을 장관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은 군집입니다. 무리지어 일제히 피어나는 산수유꽃은 다른 꽃들과는 달리 먼 곳에서 은근한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바람이 불면 파스텔 톤의 노란 물결로 일렁이는 산수유 꽃무리는 늦봄에 황홀한 꽃비를 내리는 벚처럼 시야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한 풍경입니다.
산수유는 살갗에 닿는 공기가 제법 쌀쌀해지는 늦가을에 다시 한 번 장관을 연출합니다. 오래전 꽃이 진 자리에 루비처럼 붉은 빛깔의 열매들이 알알이 맺혀 가을햇살을 맞아 영롱하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죠. 산수유 군락지는 이 무렵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로 몸살을 앓습니다. 하나의 나무로 계절을 건너 뛰어 두 가지 원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죠. 남자에게 참 좋다는 산수유 열매는 눈에도 참 좋습니다.
산수유꽃의 꽃말은 ‘지속(持續)’, ‘불변(不變)’이랍니다. 유래가 불분명한 꽃말이지만, 그 꽃말 하나만으로도 연인들이 노란 꽃대궐 안을 거닐어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이는군요. 멀리서 손에 닿지 않았던 아련한 풍경이 생각보다 지척에 다가와 있습니다.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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