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상현 기자]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 추진 소식으로 우리나라와 이란의 우호 관계의 상징인 ‘테헤란로(路)’가 다시 조명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검토는 이란 핵협상 타결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된 이후 서방 국가들이 앞다퉈 이란을 찾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첫 방문이 된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이란과 연간 100억달러 수준의 꾸준한 교류관계를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와 이란과의 협력관계는 박 대통령의 선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나라 협력관계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강남의 상징물이기도 한 테헤란로다.
테헤란로는 지난 1973년 오일쇼크 때 중동국가 중 유일하게 이란이 우리나라에 석유를 공급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생겨난 거리의 이름이다. 서울에 있는 여러 도로 중 유일하게 외국의 수도 이름을 딴 것으로 강남역에서 삼성역에 이르는 길이 3.7km, 넓이 40m의 도로다. 원래 이름은 ‘삼릉로’였다.
지난 70년대 호황을 구가했던 중동지역의 건설특수를 끌어들이고, 이란과의 우호를 증진한다는 외교적인 의미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명칭을 따서 명명했다.
석유화학 산업 육성을 위해 산유국과의 교류 확대가 절실했던 박 전 대통령은 중동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했다. 그 와중에서 1971년 이란과 외교관계를 체결했고 서울시와 테헤란시는 자매결연도 맺었다.
1977년 6월 골람 레자 닉페이(Gholam Reza Nikpay) 테헤란 시장과 구자춘 서을특별시장 간 ‘서울-테헤란 길명 교환 합의서’에 따라 서울에 ‘테헤란로’를 이란에는 ‘서울로’를 지정해 명명하기로 합의했다.
또 90년대에는 IT벤처기업들이 테헤란로 주변에 대거 입주하면서 ‘테헤란밸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박정희 정부 시절 이란의 최고실세였던 팔레비왕은 새마을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며 박 전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직접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과 박 전 대통령의 서거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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