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제도ㆍ사상ㆍ이념은 해당 국가의 문화와 만나 새롭게 해석된다. 지난해 사망한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가 ‘아시아적 가치(민주주의)’를 강조한 것도, 북한이 여전히 ‘우리식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서구제도의 ‘토착화’ 과정에서 일어난 새로운 해석의 일환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귤화위지ㆍ橘化爲枳)’가 되기도 한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주요국들은 대부분 증시에 점심시간제를 도입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외에선 없는 제도다. 이는 아시아권 문화와 관련이 깊다. 대체로 점심시간제 도입 원인에 대해선 ‘국물 식단’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들 국가들은 점심에 국물이 있는 식사를 선호한다.
‘시원한 설렁탕’으로 해장하는 한국과, ‘진한 국물짬뽕’을 선호하는 중국, 기상천외한 각종 라면을 먹는 일본 등도 모두 점심시간에 국물 식단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같은 국물 식단은 사무실에서 먹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샌드위치로 대표되는 서구식 점심 문화와는 달리, 국물이 들어간 식사로 점심을 먹기 위해선 식당을 찾아야 하고, 국물을 끓이는 시간과 다시 식혀 먹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결국 점심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은 지난 1998년 12월 이전에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를 ‘전장’,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를 ‘후장’이라 하여 하루 5시간 동안만 매매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1시간 동안이었다. 전후장 구분이 사라진 것은 지난 2000년 5월부터다. 점심시간이 사라진 이유는 IMF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거액의 외채를 빌려써야하는 ‘나라망한 슬픔’에 사회 대부분의 제도를 ‘서구화’하도록 강요되면서 점심시간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IMF 환란이 한국 증시에서 점심시간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라면서도 “매매거래 효율화를 위해선 전장과 후장을 나누는 것보다 하루 한번 매매가 시작되고 종료되는 시스템이 더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루에 한번만 개장ㆍ폐장되는 매매거래제가 도입된 아시아 국가들도 있다. 현지시각 기준으로 싱가포르는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8시간 동안, 대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4시간 30분 동안, 인도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6시간 30분 동안 증권 매매거래가 가능토록하고 있다.
매매거래 시간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지난 1992년에는 전장이 오전 11시30분까지였는데, 거래소 측이 이를 낮 12시까지로 30분 연장하겠다고 발표하자 한 석간경제신문에서 이를 극렬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석간 신문 기사 마감 시각이 11시30분인데, 주권 매매거래시간을 30분 연장해버리면 마감시간이 늦어주가표가 들어가는 2개면을 공란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지금처럼 HTS가 없던 당시, 주가표가 주요 투자지표였던 상황이었다. 결국 12시까지 매매거래 연장 계획은 한 언론사의 반대로 무산됐다.
세계적으로 보면 북미와 유럽의 개장 시각은 아시아권 국가들보다 길다.
미국과 캐나다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30분 동안 개장하고, 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스위스ㆍ스페인ㆍ네덜란드 등 유로존 국가들은 오전8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8시간 30분동안 주권 매매거래가 가능토록 정해두고 있다.
한국도 지난 2000년 이후 16년만에 증시 개장시각에 변화를 시도중이다. 한국거래소는 2016년 주요 경영 목표 가운데 하나로 증시 개장시간을 30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유력한 안은 현재 오후 3시인 폐장시각을 오후 3시 30분으로 바꾸는 안이다. 2014년에도 거래소측은 개장시간 1시간 연장을 추진했지만 증권사 노동조합의 반발에 밀려 무산됐었다. 이후 절충안인 ‘30분 연장’을 거래소측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측에선 거래수수료를 노린 꼼수라고 비아냥 대고, 30분 연장한다고 더 많은 거래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거래소측은 증시 활성화와 글로벌 증시의 개장시간 연장 추세, 중국과 홍콩 개장 시간과의 긴밀성 등을 고려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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