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계열사 재무 개선 방안 발표, 자구책 마련 총동원
롯데쇼핑, 보유 토지자산 재평가…자산 가치 확대 방향
저수익 자산 매각·투자축소도 추진…임원은 대폭 물갈이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롯데그룹이 ‘유동성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자구책을 총동원한다. 보유 토지 자산 재평가와 저수익 자산 매각, 투자축소 등을 추진하는 가운데 그룹 쇄신을 위해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까지 단행했다.
29일 롯데에 따르면 각 계열사는 부채와 현금성 자산 등을 공개하고 경영 효율화 방향, 재무구조 개편 방안 등을 제시했다. 롯데는 전날 서울 여의도 교직원공제회에서 열린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 설명회(IR)에서 이 같은 자구 계획 등을 알렸다. 설명회에서는 롯데지주 주최로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이 나서 재무 개선 방안을 밝혔다.
우선 백화점과 마트, 슈퍼, 홈쇼핑 등이 속한 롯데쇼핑은 2009년 이후 15년 만에 7조6000억원 규모의 보유 토지 자산을 재평가한다. 자산 재평가는 자산의 실질 가치 반영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다. 2009년 당시 실시한 재평가에서는 3조6000억원의 평가 차액이 발생하면서 부채비율을 102%에서 86%로 16%포인트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
이번 재평가에서 15년간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반영되면 자산 가치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쇼핑은 자산 재평가를 통해 자본 증가 및 부채비율 축소, 신용도 개선 등 재무 건전성 제고를 기대하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자산 재평가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해외사업, 리테일 테크 등 미래 신사업에 대한 효율적 투자비 집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백화점도 점포 효율화를 위해 부산 센텀시티점을 비롯해 실적이 부진한 점포 매각을 추진한다. 직접 보유한 점포는 매각하거나, 매각 후 재임차(세일앤리스백)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롯데는 2010년 분당점, 2014년 일산점·상인점, 포항점·동래점 등을 매각 후 재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소유주가 있는 부지에 임차했거나, 이미 세일앤리스백으로 운영하는 일부 점포의 폐점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롯데백화점은 2026년까지 8개 핵심 점포를 재단장해 경쟁력을 키운다는 구상을 내놨다. 본점·잠실·강남·인천·수원·동탄·광복·부산 본점 등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앞서 롯데백화점은 올해 초 정준호 대표 직속으로 TF팀과 쇼핑몰 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점포를 재단장했다. 지난달 공식 개장한 타임빌라스 수원이 대표적이다. 이번 인사에서 정 대표가 유임된 만큼 사업부 체질 개선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텔롯데는 부동산 자산이 상당한 만큼 롯데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와 협업을 포함해 유동성 확보 방안을 내놨다. 호텔 브랜드 중에서 ‘L7’과 ‘시티’ 자산 매각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뒀다. 고정비 절감을 위해 월드타워 내 호텔 영업 면적을 축소하고, 구조조정도 추진한다.
호텔롯데는 또 업황이 부진한 면세사업 가운데 해외 부실 면세점 철수를 검토한다. 롯데면세점은 일본, 베트남, 호주 등 해외에서 시내면세점 3곳과 공항면세점 10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 롯데렌탈은 외부로부터 지분 매각 제안을 받았다.
회사채 위기가 불거진 롯데케미칼은 저수익 자산 매각에 나선다. 여수·대산 공장은 이미 원가 절감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또 내년부터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범위 내에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선별적 투자 집행에도 집중한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글로벌 업황 부진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나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해 회사채 원리금 상환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다만 2030년에 들어서야 실적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현재 사업 수익과 비교해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지출 감축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롯데는 롯데케미칼 회사채 이슈의 빠른 해결을 위해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롯데 측은 “그룹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해 롯데케미칼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시중은행에서 보증받아 회사채의 신용도를 보강하는 조건으로 사채권자들과 협의해 재무 관련 특약 사항을 조정할 예정이다. 특히 회사채에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 보증을 추가하면 해당 채권은 은행 채권의 신용도만큼 신용도가 보강되는 효과가 있다. 기한이익상실로 발생한 회사채 규모는 2조450억원이다. 현재 가치로 6조원이 넘는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 보증을 받으면, 사채권자들의 투자심리도 가라앉아 상환 요청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케미칼은 사채권자집회 이후 법원 허가를 받아 회사채를 내년 1월 14일까지 보증사채로 전환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의 가용 유동성 자금은 지난달 기준 모두 4조원이다. 롯데케미칼은 앞서 기초화학 자산 경량화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축소하고 첨단소재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매출 8조원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을 공개했다.
롯데건설은 부채를 1조원 감축해 올해 말 부채 비율을 187.7%로 낮춘다. 올해 말 현금성 자산은 1조3000억원, 차입금은 1조9000억원대를 각각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우발채무 규모를 올해 3조6600억원에서 내년 2조4700억원대로 줄인 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등으로 2조원 이하로 관리할 계획이다. 우발채무는 현재는 채무로 확정되지 않았으나 가까운 장래에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채무로 확정될 수 있는 특수채무를 뜻한다.
롯데는 각 계열사의 자구책에도 유동성 우려가 진화되지 않으면 가용예금과 지분 매각 자금, 부동산 자산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한편 전날 롯데는 임원 인사를 통해 계열사 58곳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18곳의 대표이사를 한꺼번에 교체했다. 대표이사가 교체된 계열사에는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도 일부 포함됐다. 롯데그룹 전체 임원의 22%는 이번 인사로 퇴임했다. 고강도 쇄신을 통해 경영 체질을 본질적으로 혁신하고 구조 조정을 가속하려는 단호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