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고령화 시계도 빨라져, 새해에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하게 된다.
이에 대응해 고령인력 활용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올해 본격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노동계를 대표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온 한국노총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화 중단을 선언하며 관련 논의는 표류 중이다. 그리고 현재 국회에는 노동계가 요구하는 일괄적인 법정 정년연장을 위한 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충분한 사회적 대화를 해보기도 전에 법정 정년연장 논의가 앞서진 않을까 걱정이다.
빠르게 늘어가는 고령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존 일자리의 근로조건을 강화하기보다는 더 많은 고령자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방향의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그런데 법정 정년연장은 소수에게 혜택이 집중되고 다수가 피해를 보는 좋지 않은 정책이다.
우선 법정 정년연장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 심화시킨다. 지난해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 통계를 보면, 기업규모가 클수록 정년퇴직 비중도 높다. 전체 정년퇴직자 중 10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 비중이 3분의 1(35.1%) 이상일 정도로 정년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정년제 도입 자체도 노동조합이 있거나 규모가 큰 사업장일수록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정 정년을 연장할 경우 이미 높은 임금과 고용보호를 누리는 유노조·대기업·정규직에 혜택이 집중되고, 그 밑에 가려진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다시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단초가 될 것이다.
일괄적인 법정 정년연장은 일자리에 미치는 부작용도 크다.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성과가 부진한 근로자도 해고하기 매우 어렵고, 생산성보다는 근속연수가 길수록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연공급 임금체계가 지배적이다.
이로 인해 오래 근무한 고령자일수록 생산성과 임금간 괴리가 매우 크다. 여기에 법정 정년마저 60세로 의무화되면서 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들은 고령자 조기퇴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2013년 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정년퇴직자보다 조기퇴직자가 더 많이 늘어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정년 의무화가 오히려 고령자 고용 불안을 부추긴 것이다.
나아가 법정 정년연장은 청년 일자리에 치명적이다. 고령자의 정년이 늘어나면 대기업·공공부문 같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중심으로 세대간 일자리 경쟁이 불가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청년에게 돌아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청년 중 ‘쉬었음’ 인구가 42만명으로 1년 만에 25% 증가했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희망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좌절한 청년들로 추정된다. 고령인력 활용도 중요하지만, 미래세대가 양질의 일자리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기성세대의 책무다.
이처럼 일괄적으로 법정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 같이 고령자가 실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대안 논의가 시급하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일부 기득권의 공고화가 아닌, 더 많은 근로자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zzz@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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