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회> 적과의 동침 35

유민 회장이 런런런 SPC의 역할분담 개념표를 검토하는 중이니, 차제에 우리도 주인공들의 상열지사 개념표를 점검해보기로 하자.

현성애와 사랑놀음을 하던 유민 회장이 느닷없이 강유리를 총애하자 현성애는 복수의 칼을 뽑아든다. 그 복수란 유민 회장의 아들 유호성에게 자동차 레이스의 참맛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 칼을 든 자 칼로 망하듯이 자동차에 미쳐 인생을 말아먹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굳어진다. 따라서 그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유민 회장에게 접근하고 그의 제물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이 내용은 고차원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이 내용을 1학년 3반 삼식이 수준에 맞추어 풀어보면 그나마 이해가 갈 것이다.

마음 주고, 정을 주고도 유민 회장에게 차인 현성애가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몸을 준다, 엇 뜨거워… 정도로 요약하면 어떨까?

그런가 하면 강유리는 운명론적으로 유민 회장을 홀리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이번엔 그의 아들을 넘본다. 텐 프로 룸살롱 아가씨처럼 두 테이블 뛰기.

대충 여기까지 개념표를 훑어보니 유민 회장의 아들인 유호성의 몸뚱이를 누가 차지하게 되느냐가 핵심으로 굳어진다. 거기에 수천 억 원의 돈이 개입되고, 정략적인 사랑놀음을 넘어 순정마저 녹아들다보면 아스피린이라도 먹어야 할 정도로 뒷머리가 당기곤 한다.

“힘드셨지요? 회장님.”

유민 회장에게 열렬히! 몸을 던져야만 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고 있는 현성애는 언제 몸을 던져야 하는지도 역시 훤히 꿰차고 있었다. 꿀물도 타줄 때를 알아야 하고 밥도 때를 맞춰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라면으로 배를 잔뜩 채운 직후에 갈비를 구워오는 놈이야말로 염병에 걸렸을 때 솜이불 덮어주는 놈보다 더 미운 법이다.

현성애는 유민 회장의 옆으로 바짝 다가서더니 개념표를 설명하는 척하면서 젖가슴을 그의 어깨에 대고 지그시 눌렀다. 연속극을 켜면 오프닝 시그널이 흘러나오듯이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유도하기 위한 섹슈얼 시그널이었다.

‘으~ 좋구나.’

물론 속으로만 내지른 유민 회장의 탄성소리였다. 회장 집무실에 앉아있을 때 현성애를 대하는 유민 회장의 태도는 늘 도덕선생님과 같았다. 하지만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대는 시선 때문에 그의 마음상태는 금세 들통 나곤 했다. 만약에 창문 너머로 누가 얼씬거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그 태도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으니 좀 더 진하게! 해달라는 것과 의미가 같았다.

“사업관리자로 되어 있는 ABC컴이 누구 거예요?”

“정치하는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일이에요. 모르는 척하세요.”

“그 사람들, 의리는 있더라고요. 남의 돈 3000억원을 그냥 집어삼키겠어요? 일단 국회의원 자리 하나 꿰차고, 그 다음에…”

“으~ 좋다.”

현성애가 그의 어깨에 젖가슴을 더욱 밀착시키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유민 회장이 신음과 같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현성애는 공연히 책상 모서리에 있는 볼펜을 집어 드는 척, 바닥에 떨어진 검불을 집는 척하며 그의 어깨와 젖가슴과의 마찰계수를 서서히 높여갔다.

“회장님, 그러니 주위에서 아무리 반대해도 밀어붙이세요. 그래서 정치도 하시고요, 일본, 중국에 레이싱 사업을 펼치면서 웅지를 넓히세요. 그러자면 아드님을 내일 당장 일본으로 보내야 할 거예요. 레이싱 아카데미 입학 마감일이 코앞에 닥쳤거든요?”

“좋아요. 진짜로 결심했어. 내일 당장 호성이를 일본으로 보냅시다. 그런데 현 양은 무슨 향수를 쓰기에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나?”

좋은 냄새? 이 멘트 역시 ‘오늘 한번 하자’는 뜻의 유민 회장 식 오프닝 시그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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