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날개에 숨긴 칼 (52)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삼학도 갓바위 아래의 어두침침한 그늘에서 한동안 미어캣 놀이에 빠져있던 유민 회장과 현성애는 이제 교대로 허벅지를 안마하는 중이었다. 자동차 천정의 뚫린 구멍 사이로 오르락내리락 쪼그려 뛰기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평소 다리운동이라곤 담을 쌓고 지내다가 춘심이 작동한 김에 그 짓을 반복했으니 허벅지가 뻐근할 수밖에.

“그래, 우리 호성이 녀석은 어디에 있는 거요?”

“목포 시내 여관에 모셔놓았어요.”

“여관? 호텔도 아니고? 얼빠진 녀석 같으니… 가문의 망신이야. 그건 그렇고, 도대체 옷을 홀딱 벗고 목포 시내를 뛰어다녔다는 건 무슨 소리요? 스트레칭인가 스트리킹인가 뭐 그런 미친 짓을 한 건 아니겠지?”

“그나마 아드님은 고쟁이라도 걸쳤지요. 함께 밀월여행을 마친 김지선은 아예 홀랑 벗고 대로를 뛰었어요.”

“어허! 밀월여행이라니. 현 양도 말조심해야지. 스포츠 신문에 기사라도 뜨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박은걸요? 어쩌면 지금쯤 인터넷을 후끈 달구고 있을 지도 몰라요, 회장님.”

“그 녀석 정체가 이미 밝혀졌단 말예요?”

“그럼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유민그룹 후계자라고 떠들어 대는 소리를 두 귀로 확실히 들었어요.”

“어허, 이거 큰일 났군. 그렇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당장에 신문사에 연락해서 기사를 막아야 해요.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말이야.”

“기사만 막으면 뭐해요? 인터넷에 뜨면 끝장이지요.”

“난리 났군, 난리 났어.”

유민 회장은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는지 좁은 자동차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성애는 태연하기만 했다.

“회장님, 아무 걱정 마세요. 수소문해보니 아드님과 함께 밀월여행을 마친 김지선이가 꽤 유명한 레이싱 모델이더라고요. 그런 모델이 옷을 홀랑 벗고 목포 시내를 아드님과 함께 뛰었단 말입니다.”

“그러니 큰일 아닌가. 어째서 걱정을 안 해요? 그리고 말끝마다 밀월여행 어쩌고 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회장님도 참 답답하세요. 적어도 인터넷이나 신문기사에 아드님 사진은 한 장도 안 나올 거라고요. 왜냐하면… 사진 찍던 사람들 백이면 백 모두가 홀랑 벗은 유명 여자모델을 찍지, 고쟁이라도 걸친 남자, 그나마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남자를 찍었겠어요?”

김지선은 브래지어 후크를 채우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딴에는 그렇군. 하지만 자네 말마따나 내 아들과 밀월여행을 떠났다는 건 어쩌고?”

“내일 당장 목포 항구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아드님을 태우세요. 제가 만사 젖히고 나서서 동행해 줄게요. 주말에 오토싸롱 관람 마친 뒤에 바로 일본으로 따라갈래요. 어차피 레이싱 훈련을 일본에서 시킬 바에야 당장 시작하자는 겁니다. 그래야 밀월여행 기사가 떠도 오리발을 내밀 수 있어요. 봐라, 내 아들은 그날 일본에 있었다! 하고 말이지요. 두고 보세요. 사람들의 입에는 홀딱 벗은 김지선 얘기만 오르내릴 테니까요.”

현성애의 말에 유민 회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백번 곱씹어보아도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현성애가 일본까지 동행하며 아들 녀석의 뒷바라지를 하겠다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유민 회장은 애틋한 마음으로 현성애를 끌어안았다. 자기를 위해 몸 바쳐 희생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고맙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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