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을 거르고 3년 만에 열린 오토싸롱은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토싸롱의 매력은 역시 세계적인 명차와 슈퍼카, 그리고 국내외의 튜닝카가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그 자체일 것이다. 물론 터보차저, 타이어와 휠, 내비게이션, 카오디오, DMB 등등 애프터마켓 용품과 튜닝 부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70%쯤 벗고, 30% 정도만 걸쳐 입은, 말 그대로 헐벗은 레이싱모델들이 떼로 모여 있는 것을 최고의 구경거리로 삼는 이들도 많았다. “저 람보르기니야말로 상어처럼 몸매가 쫙 빠졌거든? 저런 놈을 타고 시내를 누비면 폼 좀 날거야.” 도종호 상무가 전시품목인 람보르기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송달민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아마조네스 복장의 레이싱 모델에게 꽂혀진 지 오래였다. 매력적인 시선에 은은한 느낌의 미소를 지닌 그 레이싱 모델은, 어림잡아 키가 175㎝를 훌쩍 넘는 데다가 7㎝ 굽의 킬힐을 신었으므로 도종호 상무의 머리꼭지는 겨우 그녀의 턱 밑에도 차지 않는 수준이었다. “목 삐겠습니다. 그만 훔쳐보세요. 그리고 저런 차를 시내에서 몰다간 방지턱에 하부가 걸려서 꼼짝도 못해요.” 로비스트 송달민이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거성자동차 재벌의 2세를 모시고 오토싸롱 관람에 나선 중이었다.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 2세는 색이 짙은 선글라스를 걸치고 챙 넓은 야구모자를 뒤집어쓴 차림이었다. “정말 낯 뜨겁군. 아버님 취향도 참 대단하셔. 저런 똥차를….” 재벌 2세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그가 찾아간 곳은 1974년산 치타를 전시한 부스 앞 공간이었다. 오래 전에 불에 탔던 흔적 그대로, 보닛 앞부분이 얽은 모습 그대로 전시된 치타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골동품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자동차를 전시한 곳에는 쭉쭉빵빵이라 일컬어지는 레이싱 모델들이 그 차를 어루만지거나 간혹 살포시 끌어안은 모습으로 요염한 포즈를 취하곤 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얼빵한 사내 녀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사진도 찍고, 그림도 그리고, 레이싱 모델과 눈이라도 맞추려고 무진 애를 쓰곤 하지 않던가.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1974년 산 치타 옆에는 관람객도, 레이싱 모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원래 배정되어 있던 레이싱 모델도 낯이 뜨거워서인지 옆의 부스로 마실 나간 모양이었다. “도 상무! 하필이면 저런 꿈의 머신 옆에 치타를 전시할 게 뭐요? 골동품을 내보이려면 자리라도 잘 잡아야지, 내 참 쪽팔려서….” 하필? 맞다. 하필이면 1974년 산 치타가 전시된 곳 바로 옆에는 꿈의 머신이라 불리며 슈퍼카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속력을 지닌 스피드 머신… F1 차량이 전시되어 있었다. 최고시속 350㎞, 겨우 3000㏄짜리 적은 배기량의 엔진으로 1만1800rpm의 초고회전을 하며 900마력 이상의 괴력을 내는 대당 380억원짜리 괴물. 그런 괴물 옆에 껍데기마저 불에 그을린 1974년 산 치타가 전시되어 있었으니 재벌 2세가 열 받을 만도 했다. 그뿐인가? F1카 옆에는 2004년을 풍미한 전설의 드라이버 ‘키미 라이코넨’이 실제로 탑승했던 MP-19모델이라는 설명마저 붙어있었으니…. “그게, 저… 회장님 명령입니다. 회장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F1카 옆에 치타를 전시해야 한다고 하시기에… 뒷돈 3000만원을 들여서 저 자리를 배정받은 겁니다.” “직책이 상무면, 아버님 정신이 약간 혼미하더라도 충성스럽게 직언을 해서 다른 곳에 치타를 전시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현격한 대조를 이뤄야 기자들이 F1카와 함께 사진을 찍게 되고, 그래야만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정말 미치겠군.” 그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오토싸롱의 맞은편 출입구로는 유민 회장과 현성애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심전심인가? 유민 회장의 얼굴에도 크고 짙은 선글라스가 씌워져 있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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