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인정사정 볼 것 없다 (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바짝 마른 섶에 불을 지른 셈인가? 아니면 불씨만 겨우 살아있던 화로에 풀무질을 해댄 셈인가? 어찌 되었건 귓불에 뜨거운 입김이 닿자마자 신희영의 아랫배에 잠들어 있던 본능이 화들짝 깨어난 모양이었다.
“강 프로는 박력이 있어서 좋다니까?”
박력이란 힘차게 밀고나가는 강한 힘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강준호는 그녀를 조용히 끌어안고 있는 중이었다. 숨죽인 채 그녀의 골반에 제 허리를 밀어붙이고 있을 뿐인데 박력이 넘치다니… 뻔할 뻔 자였다. 지금 이 순간 힘차게 밀고나가는 강한 힘을 느낄만한 부위가 어디란 말인가.
“미안해요.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박력’이 아니라서…”
포르 우나 카베자의 선율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잔잔한 물결이 밀려오는 듯하다가 일순 파도가 몰아치기도 한다. 키를 넘기는 파도에 숨이 막힐 즈음이면, 언제 그랬는가 싶게 다시 잔잔한 물결로 되돌아가곤 하는 탱고선율. 어쩌나… 강준호는 사타구니의 박력만이 아니라 춤 동작까지도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 투 쓰리… 아이고 발등이야.”
사실 강준호는 탱고 리듬을 타는 법도 모르고 있었다. 홀드를 세우고 상반신의 힘을 나른하게 빼야할 순간에도 그는 마치 골프경기에서 드라이브 샷을 날리기 직전의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발등 위로는 신희영의 날카로운 구두 뒷굽이 날아와 박히곤 했다. 지루박, 차차차라면 어느 정도 자신 있었고 그나마 고관 부인을 따라다니며 주워들은 가락은 있어서 왈츠까지도 대충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탱고의 S,Q,Q 리듬에 맞추어 4분의 2박자 속도로 다리를 꼬고 허리를 비트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신 여사님, 이거 원… ‘박력’ 때문에 춤을 출 수가 없소.”
몸을 활처럼 뒤로 휠 때마다 바지춤 안으로 바짝 세워진 지겟작대기에 충격이 가해지니 1분간에 30소절씩 이어지는 빠른 템포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제길, 탱고엔 어째서 이리도 몸을 뒤로 굽히는 동작이 많은 것인지.
“박력? 아… 그 박력!”
탱고의 아름다운 자태를 연출하려면 남자의 왼손은 직각을 이루듯 예리하게 꺾어 여자의 허리를 받쳐주어야 한다. 그러면 여자는 손바닥을 감춰 남자를 잡되 절대 손목을 꺾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노라면 여자는 남자의 오른쪽 팔꿈치에 착 감기게 되지만 몸과 몸 사이에는 주먹 하나만큼의 공간이 생겨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간은커녕 불쑥 솟아오른 지겟작대기가 신희영의 하복부를 툭툭 건드리고 있으니… 신희영이든 강준호든 엉거주춤 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학이 날개를 편 것처럼 V자로 펼쳐져야 할 순간에 그들은 엉거주춤, 이마를 맞대고 엉덩이를 뒤로 뺀 A자를 연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고만 있으면 어떡해요? 차라리 좌석으로 돌아가야지.”
“지금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요. 그 놈의 박력 때문에 허리를 펼 수도 없다니까?”
“그럼 배 아픈 척하고 허리를 숙인 채 들어가요.”
사실은 그들이 난감해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리오즈 클럽의 분위기는 뜨겁기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홀을 반쯤 채운 남자손님들의 시선은 모두 무대 쪽을 향해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풀몬티! 나체가 되어버린 무희들을 보느라고 정신이 팔려 있었으므로 신희영과 강준호의 존재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은밀하고 음습한 무대 위의 분위기 때문에 어쩌면 모든 손님들의 사타구니가 박력으로 솟아있을 지도 모를 판이었다.
“배겨서 혼났네… 그렇게 찔러대니 정신을 차릴 수 있어야지.”
신희영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상대방으로부터 이토록 야릇한 눈총을 받았을 때 날 잡아 잡슈 하고 묵묵히 있을 남자가 어디에 있을까? 강준호는 바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못 참겠군. 룸으로 갑시다.”
“못 참겠군. 룸으로 갑시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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