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6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1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던가? 아니면 남자가 금성에서 온 것인가? 누가 어디에서 왔던 남녀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유한솜은 순수하게, 정말로 순수하게 한승우로부터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데 한승우는 이리저리 계산부터 하는 중이었다.
“이 비키니가 어울리냐고요?”
유한솜은 마치 모델처럼 온갖 포즈를 취하면서 다그쳐 물었다. 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기 위해 그녀가 들인 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무려 석 달 전부터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었는데, 그나마 과일과 야채 위주로만 섭취해서 가끔씩 하늘이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상추, 시금치, 파세리, 브로컬리… 밥상 위가 온통 초원과도 같아서 자칫 사자라도 뛰쳐나올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글쎄 예쁘다니까?”
참 기막힌 대답이었다. 글쎄 예쁘다고? 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 하루에 런닝머신을 두 시간씩이나 뛰고, 시간당 5만원씩 들여가며 인공 썬탠을 하고, 피부 마사지를 받고… 온갖 오두방정을 떨었단 말이야?
“오빠, 미워요.”
그러니 바로 신파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유한솜은 눈물을 글썽이며 해변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한승우는 일순 당황스러웠지만 곧 신파극의 조연배우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삼류 에로영화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대목… 여주인공이 해변 백사장을 달리면 잡을 듯 말듯 간발의 차이를 두고 뒤따라가는 남자 조연의 역할을 감행했다는 말이다.
“한솜아, 거기 서지 못해? 제발 좀 멈춰봐.”
물론 조금만 스피드를 내면 즉시 어깻죽지를 거머쥘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한승우는 영화 진행을 위해서 슬로우 템포로 그녀를 뒤쫓아야만 했다.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우스운 것은 뛰면서도 출세의 방식을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만 돌아와. 상어가 나올지도 몰라.”
한승우의 외침이 들리기나 할까? 유한솜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하와이 해변의 밤바다는 하늘빛보다 한참이나 검었다. 멀찌감치 윤곽을 드러낸 하나우마 베이 전망대에서 작은 불빛이 깜박이고 있을 뿐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창세기 직후, 야생 그대로의 해변이었다.
“그만 돌아와, 물 밑에 날카로운 산호초가 많다고.”
한승우는 걸치고 있던 빈티지 알로하셔츠를 훌렁 벗어던진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입고 있던 바지가 물을 먹어 척척 달라붙는 통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슬리퍼를 신었는데도 발바닥 밑으로 느껴지는 산호초의 감각이 깔깔하게 전해지는 중이었다.
“오빠, 어떡해요? 발바닥을 베었어…”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는데 물속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두 발을 수면 위로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니 장난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신희영… 왕회장이 애지중지하는 외동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온통 제 잘못인 양 싶었던 것이다.
“큰일 났군. 그러기에 내가 뭐랬어? 어서 백사장으로 나가자고.”
한승우는 그녀를 들쳐 업으려 했다. 하지만 두 발을 수면 위로 들어 올리는 통에 그녀의 상반신은 기우뚱 물에 잠겨 버렸다. 어두운 밤바다에서 허연 두 다리만 들어 올리고 물속에 잠겨있는 그녀는 필경 인어와 다름없었다. 옛 동화에… 왕자를 사모한 인어가 꼬리지느러미와 두 발을 바꾸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포기했다던가?
“끄억! 어푸푸…”
그녀가 마녀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그가 놀란 마음에 두 다리부터 어깨에 짊어진 까닭에 그녀의 머리가 물속에 잠긴 까닭이었다. 잠시 꿈을 꾸고 있었나? 그가 꿈꾸며 인어의 다리를 들쳐 메고 있는 동안 유한솜은 짜디짠 바닷물을 한 바가지나 들이마셔야 했다.
meelee@heraldcorp.com
![4000만원 낼 세금을 1억 넘게 물다니…‘상속세 0원’이라도 꼭 신고해야 하는 이유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news-p.v1.20260903.e72e37cbc9ac475abd6197c15b096a38_T1.png?type=h&h=240)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