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인정사정 볼 것 없다 (20)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브레이크 없는 초고속 액션 블록버스터!’
지금 이 모습을 촬영하여 영화로 만든다면 누군가는 포스터 위에 이런 타이틀을 걸어 놓을 것이 분명했다. 규칙 따위는 없고 오로지 속도만이 지배하는 순간, 스피드의 자유를 향한 무한쾌감의 질주였으므로.
“저게 바다를 가로지르는 현수교인가요?”
영종대교 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바람이 횡으로 몰아치자 1974년 산 치타는 제풀에 차선을 이탈하며 옆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성애는 그럴수록 더욱 엑셀러레이터를 밟은 발 끝에 힘을 줄 뿐이었다.
“바람에 쏠릴 땐 차라리 오프로드를 운전하듯이 해봐요. 손에 힘을 빼고…”
“으… 알았어요.”
“브레이킹! 됐어요, 이젠 6단으로!”
“2단에서 6단! 진공 속을 달리는 것 같군요.”
분명 현성애는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전솜씨는 능수능란했다. 그녀가 손끝, 발끝으로 조작하는 치타는 V8 6,000cc 슈퍼카로서의 성능을 고스란히 보여주곤 했다. 생겨먹기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생겼어도 코너링을 거쳐 직진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발력은 완벽했다. 평균시속 180에서 가끔씩 200, 어쩌다가 230을 넘나들면서도 엔진소리는 일정했고, 차체의 높낮이 요동도 바퀴 회전에 따라 제어되는 듯 정숙하게 느껴졌다.
“옆은 보지 말아요. 천길만길 낭떠러지야.”
“낭떠러지라도 상관없어요. 난 치타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치타를 믿는다는 말이지요.”
“그래도 시운전인데…”
“머리 검은 짐승이 아닌 이상 치타를 믿어도 돼요. 액셀을 밟으면 달리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고.”
“머리 검은 짐승?”
“사람들 말예요.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
권도일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군. 지금 현성애는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잊으려 애쓰는 것이로군… 그는 이렇게 단정 지었다.
“그래요, 달립시다. 코스레코드 40분에 닿으려면 조금 더 밟아야 해요.”
얼마나 그렇게 달렸을까? 인천 국제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자량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하긴 공항 근처는 제한속도를 60킬로미터로 낮춰놓아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설 수밖에 없었다.
“라이트를 켜야겠어요. 경적도 울려야 할 것 같아요.”
“저 사람들… 욕 하겠군. 미친놈이라고.”
“비행기 놓칠까봐 달리는 줄 알겠죠?”
첨단 지형반응시스템을 갖춘 것도 아니고 서스펜션의 성능을 최고치로 높인 것도 아니었으니 좁은 틈새를 헤치며 달려 나가는 치타가 요동을 칠 수밖에. 앞뒤로 울컥거리고 좌우로 몸이 쏠리다 보니 권도일은 구토 증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미 안색도 창백하게 변한지 오래였다.
“그만! 성애 씨, 그만!”
그는 현성애의 치마폭에 오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난감할 뿐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녀는 여전히 운전을 하면서 한쪽 팔을 벌려 권도일을 제 품으로 끌어안기 시작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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