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최악의 수마가 집어삼킨 것은 태국의 수도 방콕만이 아니었다.

정계 입문 두 달만에 총리직을 거머쥐면서 태국 정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는 잉락 친나왓(44) 태국 총리가 리더십 부재라는 약점이 노출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천재지변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지만 홍수 대응과정에서 드러난 위기 대응 능력 부족은 그녀를 ‘정치적 이재민’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우선 정치권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 13일 과학기술부 장관은 방콕 북부지역 주민에게 홍수가 닥쳤다며 “7시간 이내 대피하하”고 지시했다. 하지만 20분 만에 법무장관이 이를 해제했다. 그런가 하면 농림장관은 “강물이 다 빠져나가 방콕은 안전하다”고 선언했는데 이튿날 야당 소속 방콕주지사가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부처 간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78%가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표시했다.

이런 가운데 잉락 총리는 지난 19일 홍수피해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혼자 힘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힘들다. 정쟁은 잠시 점어두고 국민의 사기 회복을 위해 각계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주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고 방콕은 안전하다고 큰소리쳤지만 불과 며칠 만에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해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했거나 방재 당국을 통제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알린 꼴이다.

친나왓 정권의 정치적 미숙은 이미 취임 초부터 조롱거리가 돼 왔다. 8월 취임식 전부터 홍수 피해에 대한 경고가 나왔음에도 9월 말에야 해외 망명 중인 잉락 총리의 친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각료들을 불러 모아 피해대책 화상회의를 했으며, 농경지와 문화유산이 다 물에 잠기기 시작한 이달 8일에야 홍수피해대책센터를 설치했다.

홍수 때문에 산업시설이 타격을 받고 대량 실직사태가 이어지는데도 잉락 총리는 자신의 포퓰리즘 선거 공약이었던 ‘최저 임금 40% 인상안’을 밀어붙여 재계로부터 “경제를 초토화하려는 것이냐”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야당은 국가 위기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날을 세우며 잉락 총리를 궁지로 몰아 넣고 있다. 이는 군부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게 돼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만큼 그녀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다. 친오빠의 후광을 입고 정계에 입문한 지 두달 반만에 총리직에 올랐지만 달콤한 신혼기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채 냉혹한 심판을 받고 있다.

한희라 기자/hanira@heraldm.com


hanir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