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열망을 품은 도전 (2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권도일은 전통 스페인 풍으로 지붕을 장식한 자그마한 호텔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산자락을 따라 앙증맞게 조성해 놓은 목장이 있고, 그 옆으로 아담한 야외풀장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임에도 불구하고 한 폭의 수채화처럼 평온한 느낌을 주는 리조트식 호텔이었다.
“여긴 내가 묵고 있는 호텔예요. 아버님은 저 방 안에서 우릴 기다리고 계시지요.”
작은 호텔이었지만 발레파킹 서비스는 훌륭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서너 명의 벨보이들이 자동차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짐을 받아들고, 별도 주차구역으로 차를 옮기는 동안 권도일은 구내 연결시스템를 통해 아버지 권일주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제가 아버님을 꼭 만나 뵈어야만 하는 건가요?”
“그럼요. 아버님께선 기어이 사과부터 하시겠다는데요?”
“말씀이 너무 어려워요. 복수를 하시겠다질 않나… 사과부터 하시겠다질 않나… 저로서는 아무런 실감도 나질 않아요.”
유한솜은 혼잣말을 하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실감은 나지 않았으나 상황은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 베트남 내해에 머물던 크루즈 선에서 겪었던 일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는 한, 이런 상황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좋아요. 만나 뵐게요.”
권도일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앞서서 걸었고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따라 걸었다. 잔디밭 위에 놓인 돌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한참을 걸어가서야 호텔 로비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에 대리석 계단을 돌아 올라가자 객실 룸이 보였다. 흰색 벽에 파란색 문,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 그림이 그려진 문에 게스트의 이름이 단정히 적혀 있었다. D.I. Kwon… 권도일이 묵는 방이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에야 문을 열고 룸 안으로 들어섰다.
“오! 유민 회장의 외동 따님? 첫 대면에 여기까지 오시라고해서 미안해요.”
권도일이 인사부터 시키려 했지만 그 노인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유한솜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수척한 얼굴에 병색이 훤히 드러났으나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푸른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참 예쁘게 자랐군요 아가씨…, 유민! 그 놈은 복도 많아. 양 손에 엄청난 재물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품 안에는 이렇게 예쁜 딸을 놓아기르고 있었군. 하지만 그 인간의 행복도 이젠 끝이야…”
권일주… 권도일 전무의 부친은 휠체어를 굴려가며 별로 넓지도 않은 호텔방 안을 빙빙 돌고 있던 중이었다. 권도일이 그녀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는지 자못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간혹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가끔 한숨을 길게 내쉬기도 하는 것을 보니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
당연히 유한솜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일의 자초지종을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 저 노인이 반신불수가 되어 휠체어에 앉아있어야 하는지를. 그러니 둘이 마주보고 있긴 해도 지껄이는 사람은 권일주일 뿐, 그녀로서는 묵묵히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한솜 양이라고 했나? 아직 어린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오. 잘 들어요. 난 말이야… 자네 아버지 유민 회장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이 몸으로 여기까지 찾아왔소. 엄밀히 말하자면 복수는 내 아들이 하겠지. 나는 아들의 복수를 바라보며 뒤에서 손뼉이나 칠 테고… 어쨌든 복수를 하기에 앞서서 한솜 양에게 정식으로 사과부터 하는 거예요.”
“아… 네!”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이 저릴 따름이었다. 왜냐고? 복수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기 전에 이미 그녀의 마음이 권도일에게로 흘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어느새 권도일을 사모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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