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끝까지, 죽을 때까지(10)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그래요? 종편 방송사가 생겨서 광고를 잡기 어려워 졌다고요?”

“물론입니다. 파이 크기는 변함없는데 먹자고 달려드는 사람은 많으니 누구라도 배가 고플 수밖에요.”

“사정이 그러면 다이어트를 해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다이어트도 하던 놈이나 하는 거지요.”

“그럼 어쩌시려는 겁니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활한 중계방송을 위해서라도 회장님께서 조금 더 쏘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방송사 상무는 마음 깊이 품고 있던 생각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민 회장은 속눈썹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미 그럴 줄 알고 사랑의 연서가 담긴 팬티를 확보해 놓지 않았던가. 역시 앞날을 내다보는 데에는 귀신 찜 쪄 먹을 수준이었으므로.

“아무리 환경이 변한다 한들 약속까지 변해서야 되겠습니까? 기왕에 여섯 장으로 합의를 보았으면 끝까지 지켜주시는 게 도리지요.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뭐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날이 궂으면 항아리에 묻어 둔 된장도 변하는 법입니다, 회장님. 이왕 쓰신 김에 조금만 더 쓰시지요.”

“으흠! 으흠!”

둘은 서로 팽팽히 맞서는 중이었다. 예로부터 선불은 백해무익이라고 했던가? 이왕에 받은 3억은 어느새 흐지부지 녹아버렸으니 차제에 없었던 일로 하고, 새로이 3억을 받고자 하는 것이 방송사 상무의 생각이었다. 차용증도 없고 주고받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없으니 해코지 당할 염려도 없고 파투가 나더라도 3억 만큼 이익이라는 배짱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아야 명품 된장이지요. 나는 오래 전부터 명품만으로 그득한 세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유민 회장은 짐짓 의자를 돌려 앉고는 묵묵히 트위터로 중계방송 되는 전진후의 ‘랠리 일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청춘의 피를 끓게 하는 재규어 XKR은 리브롱 산의 정상인 크루에 도달했습니다. 심장을 울리는 엔진소리가 뜨겁게 울리고 있습니다.’

‘피스톤이 밀려나는 소리, 볼베어링이 구르는 소리, 크랭크 축이 도는 소리, 행정기관 내에서 가솔린이 점화되어 폭발하는 소리…’

‘배기가스가 머플러를 통과하는 소리, 드라이버 유호성의 심장이 펄떡이는 소리… 이 소리를 들려줄 수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늦어도 20초 간격으로 이어지는 전진후의 타임라인은 유민 회장의 입맛에 딱 달라붙는 인절미와도 같았다. 그래. 잘 한다. 트윗 세 번에 한번은 반드시 유호성의 이름을 거론해야 한단 말이다.

“의향이 없으시면 거성그룹의 레이싱 팀을 단독 중계해도 괜찮겠습니까? 회장님.”

삐딱하게 앉아 아무 말도 없이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유민 회장에게 방송사 상무는 마지막 카드를 던진 셈이었다.

“거성이라면 우리 레이싱 팀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적군인데… 여태껏 고생해서 생선 살 발라내어 적군의 입에 홀랑 넣어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아직 5개국 관통 랠리까지는 약간 시간이 남아 있으니 차근차근 연구해 보도록 합시다.”

유민 회장은 일단 이렇게 얼버무렸다. 물론 방송사 상무는 긍정적이라 판단하며 추가 입금될 3억 원을 떠올렸지만, 유민 회장은 비닐에 싸놓은 팬티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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