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현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에서 박봉관(부)과 김소순(모)의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음력 9월 29일)
- 1944년 (17세) 일본육사 입교 권유 거부. 와세다대 공대로 진학 결심. 소결로공장에 노력봉사 대원으로 배치, 제철과 처음 인연을 맺음.
- 1946년 (19세) 와세다대 기계공학과 2년을 마치고 중퇴.
- 1948년 (21세) 부산 국방경비대에 자원.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6기 생도로 선발되어 입교. 제2중대장으로 탄도학을 강의하던 박정희 대위와 만남. 육군소위로 임관(7월 28일)해 육군 제1여단 제1연대 소대장으로 부임.
- 1953년 (26세) 육군중령으로 5사단 참모. 화천수력발전소 방어를 위한 중공군과의 교전 지휘(부연대장). 5사단의 지리산 잔비토벌 작전을 위한 부대이동작전 수립 뒤 11월 육군대학 입교. - 1954년 (27세) 육군대학 수석 졸업. 육사 교무처장 부임, 진해에서 태릉으로 육사이전계획수립. 12월 20일 장옥자와 결혼. 후배 장교 황경노와 만남.
- 1957년 (30세) 장녀(진아)출생. 10월 박정희 장군(1군단 참모장)과 재회. 25사단 참모장으로 옮김.
- 1961년 (34세) 5∙16 발발. 박정희의 배려로 거사명단에서 빠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상공담당 최고위원 취임. 차녀(유아)출생. 육군준장 진급.
- 1963년 (36세) 박정희의 정치참여 요청 거부하고 미국 유학 준비. 3년(근아)출생, 육군소장으로 예편.
- 1964년 (37세) 박정희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 유학 포기. 일본 특사로 훗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일본 전역 10개월간 순방. 야스오카와 초면. 대한중석 사장으로 발령(12월 8일)
- 1965년 (38세) 육군 경리장교 황경노, 노중열, 홍건유 등 합류. 대한중석 1년 만에 흑자체제로 전환. 박정희 요청, 일본 최고 제철소 가와사키제철소 견학. 종합제철 프로젝트에 관심. 4녀(경아)출생.
- 1967년 (40세) 정부와 KISA 종합제철소 건설 가협정 조인(4월 6일). 종합제철건설사업추진위원장에 임명, 박정희 ‘제철공장 완수’ 특명.
- 1968년 (41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사명 확정(영문 약자표기 ‘POSCO’) 및 창립식(4월 1일) 개최. 초대 사장 취임. 고준식, 황경노, 노중열, 안병화, 곽증, 장경환 등 대한중석 인재 대거 합류. 영일만에 건설사무소(룸멜하우스) 개설. 공장부지조성공사 착수. 사원주택단지 매입 및 건설 착공.
- 1969년 (42세) 1월 하순 KISA 차관 약속 사실상 무산 확인. 대일청구권 자금 잔여금 포항 1기 건설자금 전용 발상(하와이 구상). ‘3선개헌안 지지성명’ 동조서명 요청거부. 연수원 개원 및 기술자 해외연수 파견. 한일 각료회담에서 종합제철 건설지원 원칙과 대일청구권 자금전용 원칙 합의. 일본조사단 영일만 방문, 종합제철건설 자금조달을 위한 한일
기본협약 체결(12월 3일)
- 1970년 (43세) 박정희 설비구매에 관한 재량권 위임(일명 ‘종이마패’). 도쿄연락소 설치. 포항1기 건설착공(4월 1일). 열연공장, 중후판공장 착공(오스트리아 푀스터 차관).
- 1971년 (44세) 재단법인 제철장학회 설립. 효자제철유치원 개원. 제선공장, 제강공장 등 주요공장 착공. 호주와의 원료구매 협상에서 일본과 대등한 조건의 장기공급계약 체결.
- 1972년 (45세) 영일만의 첫 공장으로 증후판공장 준공(7월 4일), 첫 제품 출하(7월 31일). 포철 후판제품 첫 미국 수출. 본사 포항으로 이전(서울은 서울사무소로 존속).
- 1973년 (46세) 제1고로 첫 출선 성공(6월 9일), 포항1기 설비 종합준공(7월 3일), 일관.종합제철공장 완공(연산 조강 103만 톤 체제). 포항2기 건설 종합착공.
- 1981년 (54세) 사단법인한일경제협회 회장 피선. 포항4기 설비 종합준공(연산조강 850만 톤 체제 확립). 포철 초대 회장 취임(사장 고준식 취임) 포항제철고등학교 개교. 제11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민정당) 비례대표 당선, 국회 재무위원장 피선. 포항 4기 2차 설비착공. 새 정부와의 긴 씨름 끝에 제2제철소 입지를 광양만으로 확정.
- 1985년 (58세) 포항공과대학교 설립 착수. 고준식 사장 퇴임(사장 안병화 취임). 광양제철유치원,초등학교, 중학교 동시 개료. 광양1기 설비 종합착공. 제철연수원 백암수련관 준공. 미국 USS(유에스스틸)과 합작회사 설립 합의.
- 1990년 (63세) 민정당 대표 취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 출범, 최고위원 취임. 포철 부회장 황경노 취임. 광양3기 설비 종합준공(연산조강 810만 톤 체제 확립).
- 1992년 (65세) 한국무역협회 ‘무역인 대상’ 수상. 베트남과 포스비나 합작 설립.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 준공(연산 조강 2천100만 톤 체제 확립). 포철 회장 황경노.
- 1993년 (66세) 해외 유랑. 도쿄 13평 아파트 생활 시작. 포철 회장 정명식, 사장 조말수 취임. 황경노, 박득표, 이대공, 유상부 등 이른바 ‘TJ파’ 퇴임. 포철 세무조사. 본인, 가족, 친인척,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 비자금 조사
- 1996년 (69세) 총선 앞의 여야 영입제의 거부.
- 1997년 (70세) 5월초 귀국, 포항 북구 보궐선거 당선. 김영삼 정권의 경제적 실정 중점 비판, DJT연대, 자민련 총재 취임, IMF관리체제의 국가부도 위기사태 수습 동분서주.
- 2000년 (73세) 자민련 총재 사퇴, 국무총리 취임. 소량의 각혈 시작. 5월19일 총리 사임. 신세기통신 지분 SK에 매각. 포항테크노파크 이사회 창립. 포철 민영화 완료(10월 4일)
- 2001년 (74세) 뉴욕 코넬대학병원에서 폐 밑 물혹 제거수술. 뉴욕에서 9.11테러 현장 목격. 포철 명예회장 재위촉.
- 2003년 (76세) ‘중국발전연구기금회’ 고문으로 초빙되어 베이징 댜오위타이 ‘2003년 중국발전고위충논단’에 참석, 중국경제에 대한 연설.
- 2005년 (78세) 포스코청암재단 확장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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