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 끝까지, 죽을 때까지 (28)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발 없는 말도 천리를 간다는데 이토록 신나는 소식이 신희영과 강준호의 귀에 어찌 가 닿지 않으랴. 그들이 매니저 백광돌의 전화를 받은 것은 사방이 훤히 트인 유리 상자 형 욕실에서 마치 공연과도 같은 상열지사를 마친 순간이었다.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정사를 벌인 것 같아 아직도 흥분이 잦아들지 않던 차에 이런 소식을 접하고 나니 정신을 가다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어요. 유리 양이 그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더니 드디어 귀인을 만나게 되는 군요.”

“그래요. 강유리 선수가 드디어 골프 황제를 만나게 되었군요. 가만 있자… 그러면 나는 부원군이 되는 건가?”

강준호는 아차! 싶어서 입을 틀어막았다. 마음 같아서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강유리가 자기 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상대 앞에서 더 이상 오버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하지만 강유리가 누구냐? 내 친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외동딸 아니냐!

“부원군이라고요? 부원군이라면… 왕비의 친아버지를 일컫는 말 아닌가요? 듣다듣다 별 해괴한 소릴 다 듣겠네. 잠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어도 유분수지, 강유리 선수가 타이거 우즈를 만나게 되었다는데 웬 부원군 타령예요?”

“아! 그런가? 내가 잠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었나? 어쨌든 유리 양이 출세하면 우리도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란 뜻에서 한 말입니다. 강유리 선수가 붙임성이 얼마나 좋은지는 신 여사도 잘 알잖아요? 그러니 타이거 우즈가 유리를 만나기만 하면 코를 꿰게 될 것이 뻔하고… 그렇게만 된다면 내 팔자도 늘어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도 부원군 대접을 받겠다는 건 과해요. 부원군 대접은 유리 친아버지가 받게 내버려두시고… 어서 옷이나 입으세요. 당장 유리를 만나러 가는 것이 순서니까.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기획안을 짜보자고요”

“기획안? 유리가 프로젝트 진행을 맡은 것도 아닌데 웬 기획안?”

“당신은 사업에 젬병이니까 어서 옷이나 챙겨 입으세요. 유리가 타이거 우즈를 만나게 되었다는 게 얼마나 드라마틱한 사건인 줄 아세요? 소위 사업가라면 그런 사건을 기폭제로 삼아서 장차 큰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줄 알아야 하는 거예요.”

아하! 그렇군. 역시 신희영은 대단한 사업가로군… 강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신나기는 매일반이었다. 신희영은 타이거 우즈를 통해 골프사업을 확대할 심산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유리가 골프 황제의 눈에 동태껍질을 씌우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골프 황제와 유리가, 흐흐흐… 사랑으로 맺어지기만 한다면 유리는 골프의 황비(皇妃)가 될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황비의 아버지인 나는 부원군보다도 한 끗발 높은 신분이 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리 양도 우리와 같은 호텔을 잡아 줄걸 그랬군요. 공연히 잔돈 몇 푼 아끼려다가 대어를 놓치는 것 아닌가 몰라.”

“너무 일찍부터 김칫국 마시지 말고 콜택시나 부르세요.”

“그나저나… 신 여사! 타이거 우즈가 재혼을 했던가요?”

“아니, 무슨 꿍꿍이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예요? 이빨도 안 난 젖먹이한데 갈비 먹일 생각부터 하는 거 아니에요? 하여간 강 프로님은 너무 앞서 가는 게 탈이에요. 여러 생각 마시고… 어떻게 하면 강유리 선수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연구해 보세요. 이번 기회에 그 애를 출세가도에 올려놓아야 하지 않겠어요?”

“알겠어요. 그 애가 잘 풀려야 우리 사업도 날개를 달게 될 테니…”

“그럼요. 내 남편이 우릴 버린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 줘야지요.”

그들은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콜택시에 올랐다. 혹시 유리와 함께 타이거 우즈를 만날 수도 있으리란 생각 때문에 분에 넘치게 치장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평생 단 한 번의 기회일지도 모르니 다이아 목걸이인들 아까우랴. 그들은 조용히 핑크빛 꿈속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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