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미국에 사는 처제네 세 식구가 귀국했습니다. 너무 바빠 ‘미국식 조깅’조차 제대로 못하고 산다던 동서가 3주 휴가로 불쑥 온 겁니다. 이유가 궁금했는데 결국 ‘경제’였습니다. 일감이 없어 공장이 문을 닫았답니다. 2주 무급휴가에 여름휴가 1주를 보태 온 겁니다. 아마 자주 이런 일이 있을 거라더군요. 그 친구 미국 유명 반도체회사의 실리콘밸리 내 중급협력사 엔지니어입니다. 연봉도 좋습니다. 사는 곳은 새너제이에서 좀 떨어진, 그러니까 서울로 치면 판교신도시쯤 됩니다. 5년 전 매력적인 금융상품이 있어 옆집 따라 몇억원 대출 보태 썩 괜찮은 집을 샀는데 몇 년 지나자 상환독촉에 빚 갚느라 혼쭐났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얘기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희망 차 보였습니다. 미국의 힘일까요? 설탕 한 봉지, 초콜릿까지 경매가 붙고, 생필품 ‘땡처리’장으로 1, 2달러 아끼려 몰려드는데도 에너지는 넘치더랍니다. 처제네도 크게 변했더군요. 귀국 후 열흘 동안 가급적이면 찜질방을 택해 장모님, 부모님을 차례로 모셨고, 선물로는 한국에 와서 마련한 내복을 ‘행복과 희망’ 보자기에 싸 드렸답니다. 반듯한 선물 공세에 능한 사위였던 친구입니다. 며칠 이 집 저 집 다녀보니 죄다 반팔에 여름 홑이불 그대로, 집안은 땀이 날 정도로 더워 일장 훈계한 처제입니다. 거긴 한겨울에도 실내온도 18도가 상식이고 한 뼘 이상 두터운 솜이불을 덥고 잔다고 합니다. 미국 사회의 ‘내복 눈높이’ ‘희망찾기’에 부끄러워지더군요. 우린 어떤가요. 외환위기(IMF) 당시 장롱 속 금반지 모으기 이후 일절 감동이 없습니다. 너무 써먹은 거죠. 대정전(블랙아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더 잘 아는 관가나 대학에서 20도가 춥다며 불만이 쏟아집니다. 그들 대부분 내복 안 입었을 겁니다. 이쯤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 얘기를 이어보죠. 글로벌 짠돌이쯤 된다네요. 에어컨이든 히터든 안 켠답니다. 가방엔 옷 얼룩 지우는 세제, 치실까지 넣고 다니고요. 뭔가 다릅니다. 요즘 청와대가 너무 삭막합니다. 잔잔한 감흥도, 구수한 된장냄새, 아님 붕어빵 같은 분위기가 안 납니다. 며칠 전 대통령이 직접 물가를 챙겼지요. 배추ㆍ마늘ㆍ고추ㆍ상추 등 식료품에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서 제대로 잡으라 다그친 겁니다. 그런데 걱정입니다. 물가 잘못에는 하느님 몫이 워낙 크거든요. 공무원들이 물가하고 드잡이하려 들면 농민들만 죽어날 게 뻔합니다. 민폐지요. 참으로 다행인 건 우리에게도 감흥의 리더십이 없진 않습니다. 작년 10월 하순부터 내복을 입은 분, 김황식 총리입니다. 어느 행사에 앞서 바지자락을 걷어 내복을 자랑하며 순진하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겁니다. 또 얼마 뒤 형광등 3분의 1만 켠 채 집무실에서 신임 성 김 주한미국대사를 기다리다 현장에 일찍 간 기자에게 들킨 겁니다. 더 알고 보니 지난여름 큰 정전 이후 줄곧 그랬다더군요. 감동 충분합니다. ‘중도저파’ ‘이슬비 총리’로, 일체의 가식 없이 진정성 넘치는 모습으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총리가 좋습니다. 그분 대타로 나와서 홈런 빵빵 터뜨린 셈입니다. MB정부 들어 유일하게 성공한 인사가 될 가능성이 점점 높습니다. 요 며칠 수은주가 뚝 떨어졌습니다. 더 추워지면 공무원들 칼퇴근한답니다. 상징적인 조치치고는 너무 이상합니다. 내복 입고 일하면 되는데 말이죠. 10여년 전 ‘과천 고급공무원 20명만 휴가 보내면 경제가 확 살 것’이라는 우스개가 있었지요. 규제가 문제였지요. 이제는 ‘물가 잡으라고 윽박지르면 우르르 물가로 몰려가더라’는 조크가 나올 판입니다. 얼른 총리의 ‘희망 바이러스’가 사회로 더 널리 번졌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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