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0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35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리려 했던 재규어 XKR이 문득 펠부 고원으로 들어서자 놀란 쪽은 오히려 멀찌감치 그 뒤를 따르던 그레이스 팀의 권도일이었다. 앞서 달리다가 치킨게임으로 상대방을 유도하려는 작전이 실패했으므로 그는 재규어의 뒤를 따르며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하던 중이었다.
“유호성이 펠부 고원으로 들어섰군요. 이걸 어쩌지?”
“어쩌긴요… 이번 구간은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요. 우리 치타는 숏다리라서 펠부 고원 통과는 불가능해요.”
타이어 반경이 작고 폭이 좁으니 산길주행에 무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네 바퀴에 스터드가 박혀 있다고 한들 위험은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김지선의 경고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미 심장이 뜨겁게 달아 있던 권도일이 그녀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다리는 짧아도 심장은 튼튼합니다. 원수가 지름길로 가는데 내가 손쉬운 길로 돌아간다면 아버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재규어가 찍어놓은 타이어 자국을 따라 권도일은 과감하게 1974년산 치타를 몰았다. 작고 왜소하고, 불에 그을은 차체였지만 6000cc 배기량에 500마력의 힘이 차체를 강하게 올려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사가 더해지자 차체는 심하게 미끄러지며 앞부분이 헛돌기 시작했다. 바퀴가 헛돌면서 파편처럼 뒤로 밀려나온 얼음조각들은 차체 하부에 떡이 되어 달라붙은 채 얼기 시작했고, 그 얼음덩이들이 오히려 차량 전진을 방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후륜구동으로 개조해서 그래요. 도일 씨! 이젠 재간이 없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요. 어서 방향을 바꿔 드롬 지역으로 가요, 네?”
“드롬 지역? 완만한 구릉으로 이어진 곳?”
“네, 오히려 구릉을 잘 타면서 속도를 내면 제1 스테이지에 유호성 선수보다 더 먼저 도착할 수 있다고요.”
“나는 유호성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 이 경기에 출전한 게 아니잖소.”
이를테면 유호성과 단순히 스피드 경기를 벌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까짓 것으로 우열을 가려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목적은 야금야금 유호성의 자존심을 긁어내어 그로 하여금 미치도록 하자는 데 있었다. 유호성은 단순한 녀석이니 분노하다 못해 미치면….
“잘 알고 있어요. 미치게 만든 후에 제풀에 내달리다가 사고를 당하도록 유도한다는 작전. 하지만 치킨게임에 넘어오지 않은 걸 보면 유호성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도일 씨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요.”
“그럴까요?”
권도일은 조심스럽게 1974년산 치타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녀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려는 것만 같았다. 한쪽은 바위로 막힌 벽이었지만 반대쪽은 천 길 낭떠러지였으므로 차체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도 진땀이 흐를 정도였다.
“자, 그럼 갑니다. 이젠 앞이 헛돌지 않을 거예요.”
이럴 수가! 운전석이 산 아래쪽을 향하도록 방향을 바꿨는가 싶더니… 권도일은 몸을 뒤로 돌려 전 속력으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뒤가 앞이 되도록 돌려놓고 운전을 하니 후륜구동이 전륜구동으로 바뀐 셈이었다.
“아! 이런… 이런….”
말벌에 쏘인 놈이 모기를 겁낼까? 치킨게임을 벌일 때부터 목숨을 저당잡혔으니 겁날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편으로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충천하는 듯싶었다. 물론 자책하는 심정은 옆자리에 앉아 하얗게 질려가는 김지선의 표정 때문이었다. 속도를 높일수록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해보지만 눈빛, 그리고 숨이 잦아드는 모습은 속일 수 없었다. 치타는 후진으로도 시속 60km를 능히 주파하고 있었다. 계기판을 들여다보나, 창밖의 천 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나, 김지선으로서는 마찬가지로 두려울 뿐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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