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끝까지, 죽을 때까지 (38)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전설적인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 그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헤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희영을 비롯해서 강준호, 유한솜, 강유리… 그들 모두는 뜻하지 않게 들이마신 김칫국물 때문에 심한 배앓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타이거 우즈와 단지 말 몇 마디 섞어 보고 싸인 한 장을 받았을 뿐이건만 그들은 가슴 속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리야, 잘했다. 네가 각선미를 슬쩍 드러내는 순간 타이거 우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단 말이다. 기다려 봐, 조만간에 다시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 올 테니까 말이야.”
이건 강준호가 마신 김칫국물의 효과였고,
“어때요? 나도 영어 좀 하지요? 타이거… 그 친구가 우리 유리를 수제자로 삼아주기만 하면 우리 유리는 출세가도를 걷게 되는 거예요. 미셀 위나 쳉야니 선수와 명 대결을 벌이는 유리 양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네요.”
이건 김칫국물에 체한 신희영의 증상이었으며,
“스포츠 신문에 보도 자료부터 돌릴까요? 요즘 스포츠 시즌이 아니라서 기사 내용이 보잘 것 없던데… 강유리 씨와 타이거 우즈의 조인트 기사가 뜨면 온 동네가 발칵 뒤집어 지겠지요?”
이건 한 발 더 앞서나간 한승우 실장의 증상이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타이거 우즈와 반경 5미터 이내에 서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정신분열 내지는 착란 증세로 빠져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야만 할 것’이란 강박에 시달리다보면 본인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으로 착각하게 마련이다. 상상임신으로도 헛배가 불러오고 밀가루를 먹은 뒤에 병이 낫다고 믿는 위약효과도 따지고 보면 이번 일과 다를 바 없는 강박증세일 지도 모르겠다.
“자, 그럼 이쪽 일은 대충 정리가 됐으니 다시 모나코 리틀스완 호텔로 돌아갑시다. 내일이 몬테카를로 랠리 마지막 날이잖아요. 이제 호성이 녀석이 꼴찌로 기어서 들어오는 꼬라지만 보면 되는 거예요. 그 모습을 사진에 잘 담아서 남편에게 보내줄 거야. 그 꼴이 신문에 대문짝만이나 하게 실리면 좋겠네.”
“이왕이면 강유리 선수 기사와 같이 뜨면 좋겠군. 강유리 선수는 펄펄 날고, 유호성 선수는 설설 기고… 그럼 얼마나 통쾌할까?”
신희영은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가는 중이었지만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녀 생각대로라면 앞길은 탄탄대로와 같이 열려 있었다. 남편과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위자료 조로 막대한 자금이 굴러들어올 것이고, 타이거 우즈와 조인트 계약이 성사되기만 하면 그녀가 매니지먼트 하는 강유리는 LPGA 선수로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될 터였다. 게다가 몸 좋고 힘 좋은 강준호와 사랑의 싹을 키워가고 있으니 노년팔자 이만하면 됐지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다.
“유민 회장은 땅을 치면서 후회하겠군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애초에 강유리 선수를 사업 파트너로 잡았다면 그 양반도 대박이 났을 텐데.”
“누가 아니래요? 골프산업이 얼마나 큰 시장을 품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지요 뭐. 전 세계 100 여 개국에 36,000개가 넘는 골프장이 있잖아요? 그 골프장마다 사람들이 버글버글하다고요. 연간 10%가 넘는 성장률에 골프클럽 시장만 해도 40억 달러가 넘는다는데… 그런 시장을 주름잡게 될 강유리 선수를 개 닭 보듯 해? 기껏 한다는 짓이 뭐? 랠리?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을 운전수로 만들어서 얼마나 호강하나 보자고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경주로는 아직 돈 벌기가 어렵지요. 그 양반이 뭘 몰라서 그래요.”
“미련 곰퉁이지 뭐. 그런 판단으로 무슨 사업을 한다고… 장차 인도나 중국까지 골프 붐이 일면 그제야 뒷북치겠다고 나서겠지.”
몬테카를로 시내를 향해 달려가는 콜택시 안에서 신희영과 강준호는 언제 무너질 지 모를 모래탑을 쌓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밤이 깊었지만 몬테카를로 시내는 불야성이었다. 어쩌면 새벽부터 몬테카를로 시내를 질주하게 될 랠리 카들을 반기기 위해 사방에 조명등을 밝혀놓은 까닭이었다. 도로를 향해 전망석을 만들어 놓은 호텔이나 바, 커피숍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지금 그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서 랠리나 F1 시장이 월드컵 축구보다도 더 큰 시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오로지 강준호와 신희영 뿐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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