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5회> 바람 부는 길 3
권도일이 휴가를 마치기도 전에 거성의 재벌 2세를 찾아간 까닭은 이스라엘에서 발간된 석간신문의 짤막한 기사 때문이었다. 현지에서 발간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항공택배로 받아볼 수 있었지만 그 기사의 주요 부분에 사인펜으로 죽죽 그어놓은 붉은 밑줄은 아직도 선명했다.
“해외 제3국 언론을 취합하던 중에 이런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무슨 기막힌 내용이기에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셨습니까? 권 전무께선 지금 휴가 중이지 않았나요?”
“휴가 중이지만 이런 기사를 본 이상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비밀리에 ‘사마리아-가자 랠리’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까? 처음엔 매체 담당자가 번역을 잘못한 줄 알았지요. 혹시 오보 아닐까… 하지만 번역은 정확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가자지구를 종단하는 동계 랠리경기 중에 사상자가 생겼다는 짧은 소식입니다.”
“이스라엘 동계 랠리 기사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상자 중에 ‘거성 오브 코리아’… 즉 우리 거성그룹의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부상, 나머지 한 명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보도지요. 이게… 과연 오보일까요? 오보가 아니라면 제3국에까지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벌인 이벤트입니까?”
재벌2세 앞에 신문을 펼쳐 든 권도일은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궁금함을 참아내기도 어려웠지만 재벌2세가 언론플레이에 너무 과한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특히 1974년에 생산된 낡은 차를 정점으로 내세워 언론을 유도하는 이면에는 무언가 피치 못할 사정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잘 오셨습니다, 권 전무님.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 의논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동안 어째서 우리가 기막힌 국제 쇼를 감행해야만 했는지를 말입니다.”
재벌2세는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 물며 대답했다. 건강 제일을 외치던 그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제 쇼라 일컬어지는 그 일의 중대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했다.
“게릴라 레이싱이란 명목하에 세계 유수의 명차들을 불러 모아서 스키장을 활강토록 하는 것… 그 이벤트야말로 언론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매 경기마다 1974년 산 치타를 내보내는 것도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만하지요. 사실 그 낡은 차로는 몬테카를로 랠리를 뛴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좀 전에 기막힌 국제 쇼라고 하셨나요? 게릴라 레이싱이 쇼란 말씀입니까? 아니면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한 것이 쇼란 말씀입니까?”
담뱃불이 필터까지 거의 타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권도일이 물었다. 어쩌면 권도일이 묻기를 기다리던 재벌 2세가 조바심을 내며 담배를 깊이 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랠리에 참가한 것부터 쇼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랠리가 너무 일찍 끝났어요. 그래서 쇼를 연장했던 것이지요. 동쪽에서 요란하게 국제 쇼를 벌이는 동안 서쪽에서 다른 일을 꾸며보려 했던 겁니다, 권 전무 님.”
“무슨 일을 꾸미는데 그토록 요란하게 쇼를 하신 겁니까? 그리고… 얼음 얼린 스키장이 쇼를 벌이는 동쪽 마당이라면, 정작 일을 꾸미는 서쪽 마당은 어디일까요?”
“서요르단, 이스라엘 점령지역 내에 ‘에이발’ 산이 있습니다. 해발 940m에 달하는 웅장한 산이지요. 거기에서 ‘파리아’ 강으로 이어지는 계곡 언저리는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휴전선입니다. 그 인접지역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별러왔던 일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기에 엄청난 쇼를 벌이면서까지 철저하게 언론을 따돌리는 걸까요? 큰 이익을 보장하는 사업입니까?”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접경이라니… 그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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