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4회> 바람 부는 길 32

난간 밖으로 길게 뻗은 그녀의 팔은 두루미의 목처럼 가늘고 희고 길었다. 길게 뻗은 그녀의 팔이 두루미의 목이라면 엄지와 검지로 반지를 살짝 잡고 있는 손가락 모습은 두루미의 머리와도 흡사했다. 엄지, 검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살짝 들려 있는 모습이야말로 영락없이 반지를 부리로 물고 승천하는 두루미였다.

“반지를 강물에 빠뜨리겠다고요?”

설마… 장난이겠지. 방금 전에 2800만 원이나 주고 산 다이아 반지를 강물에 던져 넣을 리가 있나. 하지만 희고 가늘고 기다란 두루미의 목을 감싸고 있던 얇은 옷자락이 강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유민 회장은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금세라도 두루미의 부리가 벌어져 시퍼런 강물 속으로 그 반지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기에.

“나를 진정으로 원하신다면….”

“아이고, 양은혜 씨! 문제가 너무 어렵소. 진정으로 내가 당신을 원하는데 어째서 반지를 강물에 던집니까? 설혹 진정이 아니라면 어떡하시려고요?”

“진정이 아니라면… 이까짓 반지는 필요조차 없어요. 도로 가져가세요. 강물에 빠뜨릴 만한 가치도 없으니까요. 자연히 우리 관계도 끝장나는 거예요.”

“2차방정식보다도 어려운 문제로군요. 나는 반지나 당신 중에서 하나를 잃어야만 하는 신세예요.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당연히 반지를 버려야지요.”

유민 회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그는 양은혜의 행동을 어쭙지 않은 장난으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어째서 목소리는 으슬으슬 떨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반지를 버리겠다고 하셨지요? 그 말씀은 나를 진정으로, 아무런 가식이나 목적 없이 원한다는 말씀이지요?”

양은혜는 다짐하듯 말을 받았다. 그동안에도 유민 회장은 두루미 목처럼 길게 뻗어있는 그녀의 하얀 팔과 그 끝에 물려 있는 반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 팔은 강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리도 연약해 보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져들 때가 아니었다. 길게 뻗은 팔 아래로 깊이가 천 길이나 되는 짙푸른 한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질 않은가.

“물론이오… 아앗!”

대답과 동시에 다급한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양은혜는 과감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 끝을 벌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두루미 부리처럼 굳게 맞물려 닫혀 있던 손가락이 벌어지자 2800만 원짜리 다이아 반지는 출렁이는 강물을 향해 자유낙하하기 시작했다.

‘미, 미, 미…쳤소? 그게 어, 어, 얼마…’ 누구라도 이렇게 소리쳐야 마땅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유민 회장은 그 와중에서도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외칠 뿐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마스터한 백전노장에 다름없었다.

“어허허! 역시 양은혜 씨는 로맨티스트예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최후의 로맨티스트란 말입니다.”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고 두 눈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지만 유민 회장은 까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아무렴, 호탕해져야지. 최소한 호탕한 척이라도 해야만 할 것이다. 800억 원을 보따리에 싸안고 있는 여자 앞에서 기껏 2800만 원 때문에 쪼잔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작 2800만 원 때문에….

“호호호,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요? 역시 회장님은 멋져요. 최영 장군 같아요.”

“최영 장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했다던 최영 장군을 닮았다니 그나마 위안이라도 받으라는 소리인가? 염병! 중얼중얼… 유민 회장은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미친 짓이었다. 그 비싼 반지를 강물에 홀랑 던져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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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