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3회> 바람 부는 길 41

맞은편 벽 위로 줄지어 매달린 환풍기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은 왠지 전혀 낯설기만 한 광경은 아니었다. 환풍기의 날개가 돌아가는 틈 사이로 아련히 밝은 빛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외부와는 깊이 단절된 곳, 어쩌면 감금, 고문 등을 일삼는 음습한 방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N-Dos? 자동차가 개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단체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행동목표는 뭐라고 했지요? 신개념 자동차를 개발하는 전 세계의 과학기술자들을 은밀히 제거하는 것이라고요? 그럼 테러단체인가요?”

권도일은 메마른 입술을 움직여가며 물었다. 마취를 당했던 것인지, 프로포플로 인한 가수면 상태에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 탈진상태에 이른 것은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날씨는 무척 더웠고 옷은 진땀을 흘린 탓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테러가 아니오. 성전을 벌이는 것이외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성스러운 일인가요?”

“자동차가 더 이상 개발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성스러운 일이오.”

“전 세계에 석유를 팔아 부를 누리고 있는 아랍 석유카르텔의 하수인이로군. 그동안 석유를 팔아 부를 누렸으니 세계인들에게 고마워해야 도리 아닐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시고… 이 메시지나 들어보시오.”

낯선 사내는 말대꾸를 중지하고 한쪽 벽면에 드리워져 있던 휘장을 걷어내었다. 그러자 36인치 정도 되는 작은 텔레비전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가 CD플레이어를 작동시키자 그 화면에 한국인의 모습이 비쳐지기 시작했다.

“제임스 리 박사?”

권도일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낯선 사내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텔레비전 화면 속의 한국인도 대답할 리 만무했다. 권도일은 눈을 비벼가며 유심히 화면을 살폈다. 아무리 봐도 화면 속의 인물은 서요르단 이스라엘 점령지역 에이발 산 계곡에서 Air Mule을 시험 운행하던 중에 실종된 블루드라이브 기술 수석연구원 제임스 리 박사가 분명했다.

“살아 있었군요. 제임스 리! 박사”

권도일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너무도 반가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면 속의 제임스 리 박사는 담담하게, 마치 담화문을 읽는 것처럼 발언할 뿐이었다.

“권도일 선수! 우리는 당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24시간 이내에 고국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돌아가면 거성의 사주에게 우리의 요구사항을 조용히 전하십시오. 우리 요구는 단순합니다.”

제임스 리 박사는 요구사항을 천천히 읽었다. 그러자 화면 하단에는 그의 요구사항이 영어와 한글 자막으로 깔리기 시작했다. 아, 저런!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지만 그의 요구사항은 호전적이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지금처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 시대가 영원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협력하여 개발하는 신개념 자동차 Air Mule의 연구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만약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거성의 모든 사업을 물리적으로 중지시킬 것이다. 거성의 과학기술자들을 은밀히 제거할 것이며, 거성이 주최하는 5개국 관통 랠리대회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런 엄청난 요구사항을 전달한 뒤에 화면은 곧 어두워졌다. 다시 휘장이 닫히자 벽면에서는 덜덜덜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요구사항을 요약해서 적어주시오.”

권도일은 옆에 지켜 서 있는 낯선 사내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단순했지만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라서 머릿속으로 정리하기조차 힘든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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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