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8회> 바람 부는 길 46
양지가 있으면 대부분 그보다 넓은 음지가 있게 마련이다. 상금 3000만달러를 차지한 게릴라 레이싱의 우승자가 있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선수가 포디엄 뒤편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을 것이란 말과도 그 뜻이 같다.
“이제 우린 어떡하지?”
저 멀리 뒤편에라도 서서 우승 트로피와 300만달러를 받는 선수에게 박수라도 쳐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까짓거 우승은 놓쳤더라도 포디엄에 따라 올라가서 우승 선수에게 샴페인이라도 흔들어 쏘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지만 막상 꼴찌를 한 전진후에게는 그런 아량을 베풀 수 있는 여유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자꾸 우리라고 하지 마세요. 어째서 굴비 엮듯이 나를 엮는 거예요? 나는 지난번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당당히 상위권에 들었다고요. 몬테카를로 랠리에 비하면 이까짓 게릴라 레이싱은 장난이라고요. 내가 주눅들 이유는 전혀 없다니까요?”
김지선은 그나마 당당했다. 하긴 그녀야 무슨 잘못이 있을까? 우승을 하건 꼴찌를 하건 모든 책임은 드라이버인 전진후가 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점 때문에 그녀 역시 잔뜩 주눅든 상태였다.
“그래, 미안해요. 똥은 내가 누면서 당신보고 힘주라는 격이야. 우리가 꼴찌한 게 어찌 당신 잘못이겠어? 모두 내 잘못이지.”
미치겠군! 여자는 남자의 이런 모습에 무너지는 모양이었다. 전진후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이렇게 말하자 가슴이 메어지는 쪽은 오히려 김지선이었다.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내 마음이 다 찡해지네!”
“이 손 놔요! 나 같은 놈은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어.”
사실 어리광이었다. 큰소리 땅땅 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런데 연거푸 꼴찌를 하고 나니 김지선의 눈을 마주치기도 미안했다. 개인 간에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스카우트를 감행하면서 자기에게 무한투자를 한 거성 재벌2세의 눈을 어찌 빤히 마주볼 수 있을까? 이렇게 난감할 땐 그저 죽겠노라고 엄살을 부리는 편이 상책이었다. 누군들 죽으러 한강으로 간다는 놈에게 등 떠미는 법은 없을 테니까.
“오빠, 제발 그런 말좀 하지 말아요. 오빠는 운이 없었을 뿐이에요. 어쩌면 머신이 너무 고물이라서 꼴찌를 했는지도 몰라. 사실 30년도 훨씬 넘은 고물 차로 레이싱을 하라는 것부터가 잘못 아니에요?”
역시 김지선은 마음씨가 비단결과도 같았다. 모든 잘못을 홀로 뒤집어쓰고 죽으러 간다는 전진후가 어찌 불쌍해 보이지 않으랴? 그녀는 두 팔을 한껏 벌려 전진후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는 그녀의 큼직한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쿨럭쿨럭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그를 끌어안은 것이 잘못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순수하지 못한 사내의 모든 행동은 결국 섹스로 돌입하기 위한 도화선이나 다름없었다.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불똥이 튀기만 하면 도화선은 타들어가게 마련이었다.
“어흐, 어흐…지선 씨!”
문제는 앞섶이 벌어진 재킷 아래로 그녀의 젖가슴을 팽팽하게 감싸고 있는 것이 얇은 티셔츠뿐이라는 점이었다. 그 얇은 티셔츠 안에서 그녀의 젖가슴은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가 없었다. 전진후가 뜨거운 눈물과 함께 코를 쿨럭이며 얼굴을 비벼대자 우아하면서도 탄력 넘치는 그녀의 젖가슴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어…왜 이렇게 비벼대요?”
이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티셔츠 안쪽으로는 단단한 두 개의 돌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는지 호호, 흡흡 이어지는 그녀의 숨소리에 맞추어 티셔츠 속의 젖가슴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을 참아낼 수 없는 사람은 애초부터 김지선이었다. 그녀는 전진후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안되겠어요, 오빠. 아무곳으로나 가요.”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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