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8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46

‘촌놈’이란 단지 시골에 사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 서울에서 변두리 반지하 셋방에 사는 사람이든, 강원도 스키장 언저리에 수만평 땅을 소유하고 그 안에 대저택을 지어 사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촌놈 소리를 듣기란 의외로 쉬운 법이다. 결국 촌놈이란 매사에 어리버리 하면서 약간 모자란 놈에게 붙이는 칭호일 것이다.

‘어김없이 그물에 걸려드는 걸 보니 역시 촌것들이 맞군.’

빤질빤질하게 생긴 사내 한 명이 화장실 앞에 기대 선 채로 이렇게 중얼대고 있었다. 지금 1등석 화장실 안에서 희한한 쇼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그는 동영상카메라를 얼굴에 바짝 붙여댄 채 촬영할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뒤집어쓴 선글라스가 얼마나 큰지 얼굴윤곽도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열려라 참깨… 열려라 참깨!’

중얼중얼, 그는 화장실과 마주한 벽에 붙어 서서 문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다린 지 어언 20분쯤 되었을까? 화장실 문에 빈 틈이 있었다면 몰래카메라로 끝장을 냈을 터이지만 웬걸, 1등석 기내 화장실 문은 어찌나 정교한지 손톱 끝을 세울 만한 틈도 없었다.

빤질빤질한 그 사내는 이제 막 유명해지기 시작한 초보 스타들만을 후리는 파파라치였다. 초보 스타들일수록 허점이 많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유명세에 가슴이 벅차 오르고,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다 보면 제 몸단속에 허술해지기 십상이란 말이다. 파파라치에게 스타들이 드러내는 허점은 곧 돈이었으므로 초보 스타들은 돈 보따리와 다름없었다.

“날 이렇게 두고 가면 어떡하냐고?”

독을 품은 파파라치가 화장실 앞에 덫을 드리웠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강유리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져 있었다. 어차피 제 힘으로 변기에 빠진 유호성을 끌어낼 수는 없었으니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하는 길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야심한 시각에 옷 벗은 남자와 화장실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면 도루아미 타불! 그러니 탈출하듯 화장실에서 빠져나오던 중이었는데….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슈퍼스타 강유리 씨 아닌가요?”

“어머, 어머!”

“에그… 망측해라, 저 안에 웬 남자 분이 옷을 벗고?”

“어머, 어머, 어머!”

“숨겨놓은 애인인가요?”

“어머, 어머, 어머, 어머…”

비명도 아니고, 고함도 아니고, 대답도 아니고… 강유리는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어머, 어머… 하는 좌절의 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다른 승객들이 모두 잠든 이 야심한 시각에 웬 남자가 동영상 사진을 찍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사용빈도 제로에 가까운 1등석 화장실 앞에서….

“이제 화장실 문은 닫으셔도 됩니다. 충분히 찍었거든요?”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어머!”

그녀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화장실 문 닫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 동안에 파파라치는 강유리의 표정과 모습은 물론, 화장실 안의 변기에 엉덩이가 끼어 허우적대고 있는 유호성의 모습까지 충분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누… 누구예요?”

강유리는 직감으로 그 남자가 파파라치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야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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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