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에서 신하균이 연기한 인물의 혈액형이 B형이라고 나온다. ‘올드보이’에서도 사설 감방의 주인이 AB형이다. 박찬욱 감독이 굳이 자신의 영화에서 이야기의 전개에 큰 변수가 되지 않는 혈액형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그것이 마침 A와 B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데 대해 한 평론은 “A무비와 B무비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자의식을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농담 반 진담 반 격인 ‘풀이’지만 그만큼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들에게 할리우드로부터 유래된 B무비의 감성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봉준호 감독은 당시로선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그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에 대해 “저예산이나 열악한 제작조건이 오히려 창의성을 북돋운다”고 말했다.

실제로 1950년대 전후 할리우드가 가장 많이 찍어낸 B무비의 장르는 공포영화와 서부영화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대표적인 B무비로 제작된 서부영화를 통해 스타가 됐다. 2003년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B무비의 감성으로 충만한 대규모 상업영화로 꼽힌다. 류승완 감독은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사진〉로 한국적으로 재현된 B무비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항일을 주제로 한 한국식 서부극과 첩보물, 액션영화의 형식과 드라마의 공식, 극의 정조를 그대로 차용했다. 심지어 배우들은 당시의 신파적 대사와 작위적이고 연극적인 말투를 그대로 모방해 오히려 웃음을 줬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임을 숨기지 않는 ‘싼티’, 유치함과 전형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촌티’, 오마주(헌정)와 패러디 사이를 마구 넘나들며 놀아보자는 ‘날티’ 등 B무비의 근본적인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었다.

한국영화에서 B무비에 대한 환호와 열광은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이끈 젊은 감독들이 가진 감성의 저류를 형성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국영화에선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로 개봉했지만, 미국에선 저예산을 들여 만든 전형적인 ‘B급 괴수영화’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B무비는 당대 사회의 통념적인 윤리의식이나 편견을 내세우는 경향이 많다. 기본적인 규칙만 지키면 감독의 자율적인 표현이 허락되기 때문에 오히려 전통적인 표현양식이나 사회의 도덕에 대한 풍자와 조롱, ‘재해석’으로 수용됐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1960년대 한국의 장르영화나 일본의 핑크 무비, 1970~80년대 양산됐던 일명 호스티스영화나 에로영화도 토착형의 B무비라고 할 수 있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