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巖의 조력자들
“박태준 같은 인물이 없으면 포철 같은 제철소는 만들 수 없다”는 고(故) 요시히로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의 말처럼 포스코의 창립은 청암 개인의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청암 자신은 ‘포스코는 사람들의 작품’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의 말처럼 포스코 설립 밑바탕에는 보이지 않은 조력자들이 많았다.
청암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한한 신뢰’가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1947년 육군사관학교(당시 남조선경비사관학교) 생도 시절 사제지간으로 만난 두 사람은 박 대통령 서거 전까지 20여년을 불가분의 관계로 지내게 된다.
청암과 박 대통령 간 에피소드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로 ‘종이마패’ 사건이다. 청암은 1960년대 후반 제철소의 부품 구매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설비 구매 비용을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치르기로 했는데, 대일청구권자금이 한국과 일본의 정부 간 협상이어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직접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청암을 불러 업무 진행상황을 보고하게 한 후 건의사항을 메모지에 간단히 적으라고 지시했다. 청암이 ‘포철이 일본기술협력단과 협의해 공급업체를 결정한다’는 내용의 메모를 쓰자 박 대통령은 메모지 왼쪽 위 모서리에 친필서명을 해 청암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무한한 신뢰의 표시였다. 훗날 포스코 사람들은 이 메모를 ‘종이 마패’라고 불렀다.
청암의 또 다른 숨은 조력자는 바로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다. 호암은 1961년 청암을 군인과 기업인 신분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5ㆍ16 군사정권이 ‘사회악 해소’라는 명목으로 기업들을 ‘부정축재’ 혐의로 몰아가던 시절이다. 두 사람은 비록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만났지만,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은 매우 좋았다.
이후 호암은 청암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청암이 포철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장기영 전 부총리와 심하게 다퉜을 때, 호암은 그를 안양골프장으로 불러 장 전 부총리와 화해의 자리를 만들어줬다. 광양에 제2의 제철소를 만들 때 기술협력을 거부하던 일본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호암이 마련해준 청암과 이나야마 회장의 독대자리 덕분이었다. 호암은 청암이 포스코를 그만둘 것에 대비해 삼성중공업을 넘기겠다는 배포를 보이기도 했다.
이들 외에도 포항제철소 창립 멤버인 고준식 전 포스코 사장과 황경노 전 회장, 안병화 전 사장 등도 청암이 포스코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다. 특히 고 전 사장의 경우 청암이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싸울 때 뒤에서 국회의원을 달래는 ‘환상의 콤비’였다고 청암은 회고한다.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박태준 회장의 말·말·말 “이 돈은 우리 조상님들의 핏값이다. 공사를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다 우향우해서 저 포항 앞 바다에 빠져 죽자.”(1968년 6월, 포항제철 건설현장)
“기업은 곧 사람이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알맞은 인재를 지속적으로 길러야 한다. 인재의 일차적 요소는 창업정신이 투철한 것이다. 능력, 예지, 판단력은 그 다음 문제다.”(1976년 9월, 임원 간담회)
“철은 산업의 쌀이다. 싸고 좋은 품질의 철을 충분히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제철보국이다.”(1978년 3월, 연수원 특강)
“무엇을 이루려면 10년은 걸린다. 몇날 밤이고 진지하게 10년 후의 청사진을 그려보라. 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청사진이 나와야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1981년 4월, 중앙일보 기고 ‘10년 후의 자기 모습을 그려라’)
“이땅에서 태어난 것 그 자체가 큰 인연이다. 나에게 일관제철소를 만드는 일이 주어졌을 때 나는 회피할 수 없는 사명감을 느꼈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1983년 4월, 사보 ‘쇳물’)
“포스코가 국가산업의 동력이 되어서 대단히 만족스럽다 애국심을 가지고 일해달라.”(2011년 겨울, 임종 직전)
박태준 회장이 걸어온 길 ▶출생=1927년 9월 29일(경상남도 동래)
▶ 가족=배우자 장옥자, 아들 박성빈, 딸 박진아·박유아·박근아·박경아
▶ 학력=와세다대 기계학과 중퇴, 육군사관학교 6기, 국방대학원 수료, 카네기멜론대ㆍ버밍햄대ㆍ워털루대 명예공학박사, 셰필드대 명예금속공학박사, 모스크바대 명예경제학박사, 고려대 명예경영학박사
▶ 경력=1950년 6ㆍ25 참전, 1964년 대한중석 사장 취임,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POSCO) 초대사장 취임, 1977년 세계철강협회(IISI) 이사 선출, 1980년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 취임, 1981년 포항제철 초대회장ㆍ한일경제협회 회장ㆍ국회 재무위원장 취임, 1986년 포항공과대학교 설립, 1990년 민정당 대표 취임, 1997년 제2대 자민련 총재 취임, 2000년 국무총리 취임, 2008년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 취임
▶ 수상내역=충무무공훈장(1950, 1952), 화랑무공훈장(1951, 1953, 1954), 금탑산업훈장(1973), 국민훈장 무궁화장(1974), 오스트리아 은성공로대훈장(1974, 1979), 독일 공로십장훈장(1983), 베세버금상(1987), 프랑스 레종도뇌르훈장(1990), 윌리코프상(1992), 칠레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최고훈장(1992), 일본 욱일대수장(1999)
▶저서= 신종 이산가족, 누가 새벽을 태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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