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SK감독 ‘팬티쇼’부터 영화배우 하정우의 ‘국토대장정’까지…

정치인 아닌 스포츠·연예스타들 공연 흥행·시청률 건 공약 봇물 리얼리티쇼·인증샷 유행 여파

팬서비스·이벤트 차원 넘어 대중문화의 새 콘텐츠로 도약

출발은 이만수의 팬티였고, 절정은 하정우의 국토대장정이었다. 스포츠 스타 이만수의 팬티는 3만여명이 지켜봤고, 연예 스타 하정우의 공약이행 ‘인증샷’은 무려 9억원짜리였다.

공약이 놀이이고 콘텐츠이며 엔터테인먼트다. 정치인이 아니라 연예ㆍ스포츠 스타들의 얘기다. 그리고 어느새 이들의 공약은 ‘쇼비즈니스’(흥행산업)를 상징하는 단어의 하나가 됐다. 이만수의 공약 조건은 “관중석이 다 차면”이었고, 영화배우들은 흔히 “500만명이 들면” “1000만명을 돌파하면”이라는 단서를 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연예 스타들 사이에 팬들을 대상으로 한 공약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통 큰 공약 실천 사례를 보여준 것은 하정우다. 지난해 5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하정우는 스스로가 후보에 포함된 최우수 남자연기자상 발표에 앞서 “지난해에 ‘국가대표’로 받았으니 올해는 수상할 리가 없다”며 “올해까지 2년 연속 받게 된다면 국토대장정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이 상을 받게 된 하정우는 공효진과 지인들을 합류시켜 서울에서 해남까지 577㎞의 국토종단에 나섰고, 이를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로 완성했다. 지난 8월 30일 개봉한 ‘577프로젝트’다. 총제작비가 9억원이니 영화 한 편이 가장 비싼 공약 이행 인증샷이 된 셈이다. 연예 스타들의 이색공약이 팬서비스나 이벤트 차원을 넘어 대중문화의 새로운 콘텐츠로 도약한 사례다.

지난 런던올림픽에선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재빨리 ‘트렌드’를 잡아 콘텐츠로 제공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음악전문채널 ‘엠넷’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미라클 런던 공약 캠페인’을 진행했다. 윤도현, 유세윤, 탁재훈, 토니안 등 엠넷의 프로그램 MC가 공약을 내걸고 특정 선수나 특정 종목 대표팀이 메달 획득에 성공하면 이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여자역도 대표 장미란에게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주겠다, 리듬체조 손연재를 위한 노래를 만들겠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메달을 따면 압구정에서 춤 추겠다는 등의 공약이 내걸렸다.

이 같은 스타들의 공약의 ‘원조’ 격은 SK와이번즈의 이만수 감독이다. 2007년 수석코치 재임 당시 홈구장인 인천 문학구장에 만원관중이 들어차면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뛰겠다고 약속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3만여명의 야구팬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그라운드를 도는 이만수의 핑크빛 팬티에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5년여 전인 지난 2007년 5월의 일이었다.

정치적 참여를 심각한 결단이나 엄숙한 행위가 아닌 놀이나 축제처럼 경험하는 최근 젊은이들의 추세를 반영해 투표나 선거에서 공약을 내거는 연예 스타들도 늘었다. 지난 4ㆍ11 총선에서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상반신을 탈의해 사진을 찍겠다”고 공약한 개그맨 김제동이 대표적이다. 연예 스타들의 ‘정치적 공약’이 팬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자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당시 투표율 70%를 두고 안철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 추겠다”고 했고, 정동영은 “꽁지머리에 빨간 염색”을, 정세균은 “노랑 머리”, 유시민은 “보라색 머리”를 공약으로 내놨다. 일반인들도 “투표율이 넘으면 직원들에게 휴가를 주겠다” “음료수를 쏘겠다”는 등의 공약 열풍에 합류했다. 공약이 SNS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놀이가 된 것.

최근에는 배우, 가수들이 영화 및 공연 흥행이나 프로그램 시청률을 건 공약들을 쏟아냈다. ‘도둑들’의 김수현과 김해숙,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오지호, 민효린,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주지훈, ‘500만불의 사나이’ 박진영 등이 앞다퉈 500만, 1000만 등 목표를 달성하면 팬을 업어주겠다, 뽀뽀를 해주겠다, 해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겠다, 미스코리아 의상을 입겠다는 등의 약속을 했다. ‘아랑사또’의 신민아도 비욘세의 춤을 추겠다고 했으며, 싸이는 공연 관객들에게 음반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리얼리티쇼’의 인기와 ‘인증샷’의 유행은 공약의 전성시대를 불러왔다. 공약은 TV나 스크린, 무대 같은 가상의 세계를 벗어난 ‘현실’의 일이다. 공약하고 실천하는 연예인들은 판타지 속 존재가 아닌 현실 속의 자연인이다. 또 일반인들조차 만인에게 공개된 네트워크를 통해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사실을 확인받는 ‘인증샷’이라는 SNS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가 연예인들의 공약 열풍에 한몫했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