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2회> 사랑을 위한 의식 30
“그래요. 유호성 군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홀몸이니까 재산관리를 위탁받는 절차도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요.”
호들갑을 떠는 신희영 앞에서 강준호는 이렇게 못을 박았다. 하지만 유호성의 성격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은 강준호였다. 아무리 신희영이 친엄마라 해도 수컷끼리는 동물적으로 통하는 뭔가가 내재해 있는 법이다. 유호성이 아무리 꺼벙한 녀석이라 해도 욱! 하고 내지를 줄 아는 수컷이었다는 말이다. 수컷!
“일단, 유산이 될지도 모르는 재산이므로 내가 관리하겠노라고 못을 박아야지. 변호사가 서류 내밀고 도장 찍으라고 하면 그 녀석, 고민 깨나 하겠는데요?”
과연 그럴까? 강준호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배 아파 낳은 자식 속을 어쩌면 그리도 모르는지.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엄마 노릇은 제쳐놓고 밖으로만 나돌아다닌 결과일 것이라고 그는 단정했다.
“호성 군이 망설이거나 거부하더라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재산관리 위탁서류에 도장을 꽝! 찍는 일이 곧 아드님을 살리는 길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굳게 먹고 꽝! 아셨지요?” “그럼요. 명심해야지요. 아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판인데.”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해요. 사흘… 아니지, 이틀 뒤면 호성 군이 돌아올 거란 말입니다. 평양에서 북경을 거쳐 귀국한다고 해도 불과 다섯 시간이면 충분하니까요. 평양에서 열린 골프대회가 벌써 첫 경기를 마쳤으니까….”
“그러게요. 사흘 동안 경기를 치른다고 했으니까 잘하면 모레 저녁 무렵이면 귀국할 수 있겠네요.”
“그래요. 서두르세요. 귀국하면 곧바로 짐을 꾸려서 5개국 관통 랠리경기에 출정하게 될 겁니다. 그때 아니면 동의서를 받아둘 시간이 없어요.”
강준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이지 법적 서류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게다가 그의 말은 새겨들을수록 성경 구절처럼 마음에 와닿았으니… 더 이상 무얼 망설일까.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변호사 연락처를 알아내랴, 유호성 명의로 등재되어 있는 아파트 등기부 등본을 떼랴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바쁠수록 돌아가야지요. 천천히, 침착하게.”
“내 고향이 충청도인 줄 아세요? 아들 녀석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일인데?”
불쏘시개 하나를 들이민 것뿐인데 이미 호떡집에는 불이 번져 있었다. 엇 뜨거워라… 이런 걸 두고 모성애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리 논다니처럼 밖으로만 돌던 그녀였지만 아들의 목숨이 담보 잡힌 일이라 하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요. 맞는 말입니다. 변호사 수임료를 따따블로 쳐주더라도 확실하게 단속을 해놓으세요.”
이렇게 장단을 맞추고 나니 강준호의 마음이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유호성의 성격을 분석해보건대 그는 철부지와 다름없었다. 철부지란 어떤 작자일까? 뒤처리를 어찌해야 하는가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당장 눈앞에 펼쳐진 일에만 매달리는 작자, 만약에 누가 말리기라도 하면 더욱더 길길이 뛰는 그런 작자 아니겠는가.
‘그래, 제 엄마가 내미는 서류를 보면 그 녀석 눈에서 불똥이 튀겠지. 그리고는 더러워서 도장부터 냅다 찍을 거야. 그 뒤에는… 으히히!’
강준호의 생각대로라면 그는 더러워서 그 서류에 도장을 찍고는 미친놈처럼 랠리경기가 열리는 중국으로 내뺄 터였다. 왜냐고? 그야 두 말 하면 잔소리, 머리 나쁘고 성질 더러운 철부지였으므로.
변호사와 전화 연결이 되었는지, 전화통을 잡고 무어라 열변을 토하는 신희영을 바라보며 강준호는 으흠, 어험! 군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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