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K씨가 퇴근 준비를 한다.

보통 밤 10시나 되어야 퇴근을 준비하던 K씨가 오늘은 7시에 책상 정리를 하고 회사를 나선다. K씨에게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다. 지난 6년 4개월동안 변제해왔던 신용회복위원회의 76회 차 변제금을 완납한 것이다.

가족들과 자축연을 열기로 한 K씨는 시장에서 삼겹살 두 근을 샀다. 정육점 아저씨가 “평소보다 많이 사는걸 보니 집안에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다”며 덤으로 반 근을 더 준다. 집에 오니 저녁상을 차려놓은 아내와 아빠를 기다리고 있던 큰 딸과 작은 아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날 밤 K씨 가족들은 삼겹살을 핑계로 행복을 구워 먹었다. 저녁상 준비에는 만원 안팎이 들었지만 K씨에게 이 저녁상은 억만금의 보물로도 살 수 없는 행복 그 자체였다. 진저리나는 지난 7년여의 세월마저 달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 부족한 아빠의 힘이 되어줘서너무도 고맙고 또 고맙다.”

K씨가 대학졸업 직후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인생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고, 당시 좋은 친구이자 애인이었던 지금의 아내는 그의 합격을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결혼 후 첫딸과 둘째아들을 낳은 뒤에는 200점짜리 아빠라는 동료들의 축하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너무 문제가 없는 게 문제였다. 쳇바퀴같은 직장일에 염증을 느낀 K씨는 입사 5년만에 외국계 대형 유통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 근무여건 등이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남들이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괜찮은 직장을 두 번이나 구한 그에게 두려울 건 없었다. 그는 곧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번창했다. 그러나 사업 초기 자리를 잡게 해줬던 친구 회사의 부도로 그는 몇개월 만에 빚더미에 앉아버렸다. 끝없는 압류통지와 채무 독촉전화에 그는 정신줄을 놓을 뻔 했다. 가전제품과 집기는 혹시 압류당할까 싶어 옆 집에 맡겨 놓기까지 했다. 이때부터 가족들은 ‘어떤 전화도 받지 말 것’,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말 것’, ‘법적 독촉행위가 금지되는 밤 9시면 괜찮다’는 3원칙에 따라 살았다. 가족 모두가 초인종이 울리면 숨죽이는게 익숙해졌다. K씨는 채권자를 피하기 위해 낮에는 거리를 정처없이 거닐었고, 아이들은 “아빠 집에 없는데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K씨는 잠자는 아이들을 보며 숨소리를 죽이며 울 뿐이었다.

삶이 파탄 직전에 왔을 때 그는 지인의 조언으로 신용불량자 클럽 모임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일자리를 우선 구하고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에 따라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20차례가 넘는 도전끝에 월 100만원을 받는 일자리를 구했다.

어두웠던 나날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카드사의 무서운 독촉전화에 직장에서 일하기마저 곤란해졌을 때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으로 5000만원에 가까운 채무를 매월 분납할 수 있게 됐다. 빚 독촉을 받지 않고 일만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이때 깨달았다.

자기에게 기회를 준 모든 사람들에게 신의를 지키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으로 버티고 버텨 K씨는 지금 월 30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남들 두 배로 일한 결과 회사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지금 몇 년안에 다시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산다.

K씨는 말한다. “7년전 저와 같은 고통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압니다. 이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고통이 전부가 아니고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값진 보물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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